영화 <캡틴 마블>을 보고
웬 사랑스러운 치즈 냥이가 포스터 전체를 차지하고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그 포스터 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어서 달려가 그 앙증맞은 고양이의 활약을 보고 싶었다. 넌 누구니?
포스터 속 앙증맞은 고양이 구스의 활약은 짧지만 굵직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구스의 등장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 그 작고 귀여운 입에서 무시무시한 촉수들이 넘실 거렸을 때 마저도. 집으로 돌아와 나는 나의 고양이 사진을 합성해 마블 코리아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했다. 고양이 구스 자리에 키우는 고양이 사진이나 키우지 않더라도 직접 그린 그림을 마블 코리아에서 제공한 배경에 합성해 sns에 올리면 된다. 합성할 줄을 몰라 손가락으로 잘라내기를 시도하다가 겨우 어플 하나를 찾아내 매끄럽게 완성시켰다.
고양이 구스는 나를 미소 짓게 했다면 우리의 캡틴 마블은 나를 다시 한번 각성시켰다. 이 영화는 순간순간 나를 나의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데려다 놓았다. 내가 서 있고 맞은편에 그들이 서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힘차게 불주먹을 날렸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아닌 척, 그런 척을 했었고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나를 숨겼다. 나의 생각, 능력, 분노, 취향을 감췄다.
그들이 나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고 싶어 할 때 나는 기꺼이 그 아래에서 보호받고자 했다. 그게 여자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가 안전한 울타리라고 여기고 그대로 머물고자 했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그들이 원하는 내가 되어야 했다. 연약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고 뭘 잘 모르는 여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문득문득 행복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관계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해주는 행복은 아니었다. 위치가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느끼는 불쾌함, 불만족 감, 두려움,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자유로운 나가 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캡틴 마블이 목에 붙어 있던 제어 장치를 떼어내 버리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불을 내뿜을 때, 배신자 욘-로그에게 불필요한 말 대신 불주먹을 날릴 때 굉장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행동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괜찮아! 너도 이렇게 한 방 날려버려! 자유로워져!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된 캡틴 마블의 외침이 과거의 나에게 전달되었고,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소리쳤다. 그 누구의 아래에도 들어가지 마. 너 혼자 오롯이 우뚝 서! 그리고 너를 함부로 하는 이가 있다면 불주먹을 날려버려!!
캡틴 마블의 강력한 에너지가 나에게 와 용기가 되었다. 나로서 살아갈 용기. 불주먹을 날릴 용기.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