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4월 16일

by Ann


노트르담 성당이 무너져내리는 걸 보면서 마치 바로 옆 동네에 불이 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성당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계속 성당 사진만 보고 있다가 날이 날인만큼 세월호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한 오늘, 참 보기 싫은 기사 하나가 보였다. 어떤 국회의원이 페이스북에 썼다가 지웠다는 글에 대한 기사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자식의 죽음에 대한 동병상련을 회 처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처먹는다”라고 썼다고. 글은 곧 삭제됐다.

​나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저녁 8시 뉴스를 되도록이면 챙겨 보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시간을 들여 좀 찾아보는 정도랄까. 그래서 나의 시선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벌어진 사건과 사람을 본다. 세월호 사건도 나에게 그랬다.

​아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 하루가 또렷하게 기억이 날 것이다. 티브이를 통해 반 기울어있는 세월호라는 배를 보았고 전원 구조했다는 커다란 자막을 보았다. 그리고 잠시 관심을 껐다. 다 구조했다고 하니까. 한참 후에 누군가 켜놓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황당했다. 전원 구조라는 보도는 오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어떡해.

​그 이후부터의 상황은... 지옥, 생지옥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티브이 속에 세월호는 나의 엄지손가락만큼 작은데, 당장이라고 내가 손을 집어넣어서 건져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런데 왜 지금 눈앞에 가라앉고 있는 배를 두고 아무도 구조하지 못하는 건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건지. 애가 탔다.

그렇게 황금 같은 시간들이 무겁게 무겁게 지나갔고 생존자들은 구조자가 되지 못하고 수습자가 되어 땅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세월호에 타고 있었을 아이들의 모습이 하루 종일 인터넷에, 티브이에 나왔다. 딸의 꿈, 아들의 꿈, 그들의 마지막 말들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고 그 모든 것을 묻어야 했던 엄마, 아빠들의 울부짖음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세월호는 그런 사건이었다. 다른 걸 다 떠나 아무 죄 없는 사람들, 게다가 아주 어린 학생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된 사건. 그 사건을 두고 저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저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람이.

​영화 <미성년>의 잠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와 딸, 상대 여자, 그 여자의 딸과 아들의 인생에까지 큰 상처를 낸 한 남자가 떠올랐다. 정작 모든 것을 수습하고 책임지려 한 건 교복을 입은 두 아이들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반드시 흉터를 남길 상처를 입힌 남자는 도망치기, 변명하기 바쁘다. 어른이라고 불릴 자격이, 아빠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미성년은 민법상 만 19세 미만을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미성년은 정신적 나이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미성년자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진정으로 사과할 줄 모르는 대원(김윤석)이다. 정신적 나이가 만 19세를 넘기지 못한 사람.

​오늘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징하게 해처먹는다는 글을 쓴 그 사람도 나에겐 정신적 미성년자처럼 보인다. 적어도 어른이라면, 아버지라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을 저렇게 표현하지는 못할 텐데. 진짜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징한 사람은 바로 저런 사람이다. 가장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부류가 바로 저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정치적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나이가 많든 적든 인간은 모두 미성숙하다. 완벽할 수 없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고 해서 실수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한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통해 무엇을 깨닫느냐 하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 점검하고 회의하며 조금씩 실수를 줄여나가고 성숙해나가는 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것 아닐까. 나이만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제까지 겉옷을 여며야 할 정도로 쌀쌀했는데 오늘은 초여름 날씨다.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겨울이겠지. 봄이 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 하겠지. 봄이었다가도 순식간에 얼어붙는 겨울이 되겠지. 내가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는 그저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것과,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는 다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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