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작업실은 없고, 집은 작업이 잘 안되고. 가장 만만한 곳이 스타벅스였다. 눈 뜨자마자 씻고 스타벅스로 출근했다. 한 번 가면 3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 말고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극이 됐다.
그땐 자극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웬만하면 그들 때문에 굳이 스타벅스에 가기 싫을 때가 있다. 쉬고 싶거나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거나 좋은 생각들을 하고 싶을 때 주로 카페를 가는데 스타벅스에 가면 나도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다. 어떤 것을 즐겁게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마치 이곳이 학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왠지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스타벅스보다는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즐기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를 주로 찾게 된다. 나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등등의 작업을 하긴 하지만 중간중간 책과 아이패드를 덮고 창밖을 구경하고 커피 맛에 집중하고 멍 때리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쉬고 나를 충전시킨다. 그 중간중간 재밌는 아이디어들도 떠오르고 기분 좋은 온도의 열정이 피어오른다.
지난 주말 친구와 블루보틀 코리아 1호점에 다녀왔다. 줄이 길었지만 첫날 같지는 않았다. 1시간 조금 넘게 기다린 끝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긴 시간 동안 줄을 섰지만 누구 하나 짜증 내는 이가 없었다. 언성 높이는 일 또한 없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매장 직원들과 바리스타들이 환하게 손님들을 맞이했고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주고 있었다. 특히 블루보틀의 CEO인 브라이언 미한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매장 이곳저곳을 누볐고 손님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기다리느라 힘들었지만 그 기분은 금세 사라지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파란 병의 로고가 마음에 들어 좋아하게 된 브랜드였다. 한국엔 있지도 않아서 커피 맛도 모른 채 텀블러를 직구로 구입하고 블루보틀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팔로잉 하며 소식을 접하곤 했다. 그러다 일본 여행을 가게 되어 블루보틀에 꼭 들르겠다고 다짐했지만 일정이 꼬이면서 제대로 된 매장은 들르지 못하고 백화점 1층에 조그맣게 차려진 매장에 스치듯 들려 아이스 라테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런데 한국에 블루보틀이 생긴 것이다. 드디어 블루보틀 매장 안에 앉아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장은 지하로 내려가야 했지만 1층과 연결되어 있어 1층의 창으로 빛이 충분하게 들어왔다. 콘센트도 없었다. 예전 같았다면 콘센트도 없고 와이파이도 안 된다고 불평을 했겠지만 이제는 반가웠다. 이곳에 오면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커피 향기를 맡으며 커피를 마시며 충분히 쉬어갈 수 있겠구나.
블루보틀의 고집이 마음에 들었다. 스타벅스 같은 곳도 있으니 블루보틀 같은 곳도 필요하다. 커피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커피에 집중하겠다는 그 신념이 멋졌다. 물론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집에서 뚝섬역에 있는 블루보틀까지 가기엔 조금 멀지만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마음이 든다. 다음에 가면 싱글 오리진으로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느긋하게 마시고 즐기다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