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결심을 했다. 물론 언제든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수 있는 결심이다. 내가 이런 결심을 했었나? 할 수 있는.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 모르겠지만 살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을 써야만 살 수 있었다. 여기서 ‘살다’는 ‘죽다’의 반대말이 아니라 밥도 먹고 웃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글을 써야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밥도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웃고 영화도 보고 책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글을 쓰는 건 나에게 숨 쉬는 것과 같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글을 쓰지 않고도 살아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글을 써야만 버틸 수 있게 만들었던 무언가를 어느 정도 극복해낸 것이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랜 시간 꾸역꾸역 오른 끝에 드디어 정상을 보게 된 느낌이랄까. 가장 높고 험난한 산의 정상을 보게 된 느낌. 물론 넘어야 할 산들이 앞으로도 많지만.
그때부터 글쓰기는 나를 치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조금 더 성장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도구. 나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가 또다시 나를 계속 쓰게 만들었지만 예전처럼 목마른 동물이 물을 온몸으로 들이키는 것처럼 글을 쓰지는 못했다. 점점 내 손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는 시간들이 줄어들었다. 머리만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머릿속의 생각들은 하얀 모니터 위에 가지런히 정리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니기만 했다.
이쯤에서 왜? 그럼 어때? 글을 쓰지 않으면 어때? 하고 묻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답은 나는 써야만 한다는 것.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글을 쓰지 않으면 못 버틸 것 같은 고비도 지나갔고 글을 쓰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쓰려고 할까.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싶고, 평화로워지고 싶고, 지혜로워지고 싶은데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도구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잘 맞는 도구가 바로 글쓰기여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 하필 그 도구가 글쓰기냐고? 그건 진짜 모르겠다.
써야만 하는데 이제 좀 살만하다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나를 위해 나를 좀 괴롭히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한 첫 번째 결심은 매주 일요일 영화에 대한 글을 올리겠다는 것.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더욱 오래 좋아하고 싶다. 좋아하는 것도 지키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 자꾸 해야, 봐야, 더 깊어지니까, 더 좋아지니까.
<일요일엔 영화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주 동안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편안하게 써 볼 생각이다. 평론은 아니다. 평론을 쓸 능력은 1%도 없다. 그 영화가 건드린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자, 일단 일요일은 이걸로 채웠다. 다른 요일들은 뭘로 채워볼까.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그 고민조차 미루게 될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