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을 보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집으로 가는 동안 가슴이 답답했다. 현실이 그렇다는 건 다 알고 있었는데 그걸 다시 한번 확인하니 갑갑했다. 인생의 반전이란 없다, 안다. 영화는 그걸 잔인하게,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직시를 위한 영화였다. 집으로 돌아와 작디작은 정사각형의 방을 뒤집어 정리했다. 방이 조금 말끔해지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들이 올려다본 반지하 창문 밖 세상은 나에게 SNS의 네모난 창 같았다. 나는 늘 그 네모난 창의 사람들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들여다본 그들의 삶은 늘 나보다 나았다. 살고 있는 집도, 하고 있는 일도, 가진 물건들도. 어떻게 저들은 저렇게 살고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돈을 얼마나 벌길래? 아니, 그들은 원래부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거야. 태어날 때부터 나와는 달랐던 거야. 하는 결론에 다다르고 무기력해짐을 느끼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습관처럼 다시 그 창을 열었다.
곱등이와 자연스럽게 한 집에 살고 있는 기택(송강호)의 상황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 나는 아담한, 빛이 잘 들어오는 아파트 3층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물난리가 나도, 폭풍이 몰아쳐도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안전한 집에서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런 삶을 살면서 기택 가족에게 심하게 공감했다. 비가 많이 오면 변기의 오물이 역류하는 집에 살고 있는 기택의 가족에 말이다. 왜냐고. 나는 동익(이선균)이 아니니까. 그런 삶은 꿈도 못 꾸는 계층이니까. 한 마디로 나는 동익보다 기택 쪽에 더 가까운 위치에 서 있으니까. 기택의 가족이나 나나 뭐가 좋은지 다 안다. 아주 잘 안다. 그런데 알면서 가지지는 못 한다. 잠깐 빌릴 수는 있어도.
기택의 가족이 동익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그 집을 몰랐다면 이처럼 비참한 결말에 다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 의욕이 없어 보였던, 신기하게도 그 상황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던 그 가족이 움직인 건 그 집에 들어가 본 기우(최우식) 때문이다. 좋은 것을, 좋아 보이는 것을 봐버렸기 때문에. 만져봤기 때문에. SNS도 나에게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몰랐다면, 볼 수가 없다면 나름 나의 삶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하지만 아니었다. 다 이렇게 사는 건.
이미 나이가 꽉 차다 못해 흘러넘치다 보니 네 식구가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미 각자의 취향과 생활 패턴이 명확해 수시로 부딪친다. 엄마의 취향과 나의 취향, 아빠의 생활 패턴과 나의 생활 패턴이 한 집에서 각각 떠다니다 충돌했다. 너무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어쩔 수 없는 갈등이 생겨나곤 했다. 그래서 어렵게 동생과 함께 독립을 결심했지만 무산됐다. 내가 가진 돈으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SNS에서 본 안락하고 아기자기한 집을 꾸밀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평생? 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기우의 마지막 그 상상이 상상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던 거다. 단 한순간도 착각하지 않았다. 저게 이 영화의 반전일 거라고. 기우가 정말 저 집을 사서 아버지를 구할 거라고는 단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정답을 확인하는 순간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언제 벗어날지 모르는 작은 내 방을 정리한 것이다. 기우가 상상의 끝에 자신의 반지하 집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어쩌겠나. 현실은 이토록 잔인한데. 기우가 동익의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현실인 걸.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현실인 걸. 100개의 계단을 올라설 생각보다 1개 계단 먼저 올라가 보자 결심하는 것이 그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다짐에 불과한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
어느 날 난 SNS 정리를 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계정들을 다 없앴다. 나보다 10계단 이상 위에 있는 것 같은, 그들의 진짜를 알 수 없는 계정들을 다 정리했다. 정리를 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것들은 고양이, 책, 좋아하는 사람들. 위가 아니라 옆을 보게 만드는 것들만 남았다. 물론 그들 또한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10계단 위에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그들이 중심에 둔 것들은 내가 가진 것들과 비슷했다. 충분히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공통점들이 위아래를 무너뜨린다. 경제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나를 괴롭히는 건 자꾸 위를 보려고 하는 시선이었다. 그래서 나아질 건 없는데 말이다.
꿈꾸지 않는다. 언젠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부럽게 살아야지 하는 그런 꿈.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망설였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해 볼 뿐이다. 그것들이 그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가 궁금하다. 위로 높이가 아니라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가 주길 바란다. 그 정도는 바라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