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스토리 4>를 보고
토이스토리를 보면서 언제부턴가 저들, 특히 우디를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장난감들이 인간과 똑같이 생각한다면 슬퍼하고 기뻐하고 실망하고 성장하는 존재라면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걱정.
주인의 사랑을 받을 때, 주인에게 쓸모가 있을 때 장난감은 존재할 이유가 있다.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 더 이상 사랑해주지 않을 때 그 누구도 이 장난감을 찾지 않을 때, 그때 장난감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들의 삶은 그 이후 어떻게 되는 거지? 계속 살아있는데.
픽사에선 누구도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궁금하고 걱정이 됐는데. 그 걱정이 이번 토이스토리 4편을 통해 사라지게 되었다. 장난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삶에 대해, 그들이 장난감으로서 수명을 다 했을 때의 삶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너무 다행이었다. 고마웠다. 이 이야기를 다뤄주어서.
우디는 더 이상 선택받지 못했다. 옷장 속에서 대기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주인에게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디는 장난감으로서 주인을 기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떨치지 못하고 새로운 주인 보니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것만이 삶의 이유인 것처럼. 자신이 존재해야 할 다른 이유는 찾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9년 전에 헤어진 보를 만난다. 입고 있던 공주 치마는 벗어던지고 누구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우디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주인에게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장난감의 삶 대신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다. 하나의 주인에게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다양한 곳을 다니며 맘껏 자유를 누리는 삶을. 우디는 그런 삶도 있을 수 있음을 보를 통해 깨닫게 된다.
우디는 장난감이라는 역할 안에 갇혀살았다. 그 길만 있는 줄 알았다. 그것만이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또 다른 길도 있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왔던 우디는 명예롭게 그 일을 끝마치고 보와 함께 하는 제2의 인생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조금 뭉클했지만 누구보다 기쁘게 보내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또한 쿨하게 응원하며 우디를 보내줬다.
나 또한 정해진 길이 있는 줄 알고 살았었다. 4년제 대학 입학하고 졸업해서 월급 적당히 주는 직장에 취업해 다니다가 착한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아기 낳고 키우다가 노년을 맞이하는 그런 삶이 내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길은 당연히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어쩌다 보니 그 길과 반대쪽에 있는 길 위에 서 있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긴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다면 난 생각하지 못한 채 내가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도 모른 채 내가 맡은 역할을 수행해내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 아닌지는 알고 가야 하는데 말이다.
종종 “너는 애를 안 키워봐서 그래”, “너는 결혼을 안 해봐서 그래.”, “너는 직장 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짧게 해봤지만)라는 말을 들으며 남들 다하는 경험도 못해 본 철없는 노처녀 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걸 견뎌야 하는 삶이지만 그 정도야 뭐. 결혼을 하고 육아를 견뎌내는 사람들에 비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결혼하지 않고(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지 않고 드문드문 누군가 문을 두드려줘야만 문을 열 수 있는 서점을 운영하며, 색소폰을 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나는 좋다.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는 순간에 겨우 뗀 한 걸음걸음이, 망설임의 순간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작은 용기들이, 초조함이 나를 등 떠밀 때 눈 질끈 감고 버텼던 의지가 만들어준 것들이니까. 그래서 난 우디의 결정에 환호했다. 그리고 우디를 안아주며 따스한 용기를 보내주는 친구들에게도 고마웠다. 나에게 그런 용기를 줬던, 주고 있는 친구들도 함께 떠오르면서.
이제 우디에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 일들이 또 다른 길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디에겐 주인이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었으니까.
조금만 눈을 더 크게 떠보니 이 세상엔 길이 참 많은데 어째서 다들 미리 짜기라도 한듯한 길 위에 바글바글 모여있었던 것인지. 좀 더 다양한 삶이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 선택도 저 선택도 존중받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주인을 떠나기로 결심한 우디도 있고 주인의 사랑을 택한 개비 개비도 있고 장난감의 삶을 이어나가는 버즈도 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포키도 있는 것처럼.
다행히 토이스토리 4는 슬픈 이별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힘찬 응원이었다. 이렇게 마무리해줘서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