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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Feb 24. 2020

나를 살린 그런 책

내가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건 흩날리는 나의 흔적을 한곳에 모으고 싶어서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했던 나의 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버리는 게 더는 싫어서였다. 나는 나의 흔적을, 나의 생각의 흔적을 붙잡고 싶은 사람이니까. 끝내 글로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책이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책에 대해 난 너무 모르고 있었다. 한 편의 글과 한 권의 책은 너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여태껏 써온 글은 나를 위해 쓰인 글이었다. 책은, 단지 나만을 위한 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내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고민의 고민이 거듭되면서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아, 내가 섣불리 책을 만들겠다고 했구나. 그래도 기왕 마음먹었으니 만들어보고 싶은데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까. 단지 이야기로만 되는 것은 아닌데.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나는 어떻게 전하고 싶은 걸까.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것이며, 나는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 것일까.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여전히 확실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이후 과장을 조금 보태 24시간 내내 이 생각만 하다 보니 뭔가 어렴풋이 보이는 게 있었다. 나의 글을 읽었을 때, 읽은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는지다. 


나는 단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했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책을(글을) 읽고 어떤 기분이 되는지도 나에겐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나의 능력으로는 누가 봐도 좋은, 양질의 책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읽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빨라진 심장 박동이 제 리듬을 찾고, 차가워진 손과 발이 서서히 제 온도를 찾고, 어지럽게 떠다니던 생각들을 잠시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그런 책. 내가 그런 상황이었을 때 찾아들었던, 피해 숨어들었던, 나를 살린 그런 책.


그런 책을 지금 나의 능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가지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성을 쏟아서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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