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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Feb 25. 2020

한 법의학자의 따뜻한 시선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고

토요일이 기다려지는 건 주말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은 토요일이 되면 11시 전에 대충 일들을 마치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볼 준비를 한다. 나보다 동생이 더 좋아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좋아하게 된 분들이 있다. 가장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분은 표창원 프로파일러, 그다음 이수정 교수, 그리고 법의학과 유성호 교수이다.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어느새 국회의원이 되었고 나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서 아쉬웠지만, 그 자리를 유성호 교수님이 채워줬다. 


법의학자가 유성호 교수 한 사람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의 태도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가진 선입견에 반하는 인물이었다. 법과 의학이라는 딱딱한 분야의 전문가의 태도가 상당히 온화해 보였다. 말투 때문일까?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혹시 보고 있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태도와 말투. 그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거기에 강력하진 않지만, 정의감 같은 것도 살짝 묻어 있었다. 물론 온전히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어느 날 SNS를 하다가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작가 이름이 '유성호'였다. 책의 제목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맞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바로 그 유성호 교수였다. 언제 그분이 책을 냈지? 당장 읽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서 재빨리 대출 했다. 


그의 일에 관련된 흡사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한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의학 일을 하면서 겪은 일, 느낀 점, 방송에 나오지 못한 많은 사건을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내용이 이 책을 채우고 있었다. 바로 '죽음' 그 자체에 관한 책이었다. 


"사실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해 늘 찾아 헤매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동반되어야 비로소 삶의 소중함과 통찰 또한 얻을 수 있기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공부야말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배움인 것이다. "


내가 죽음에 관련된 책을 보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마음이 복잡하고, 초조하고, 무기력할 때 죽음에 대한 책을 보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진정됐다. 비슷한 예로 병원에 다녀오는 날은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다. 검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내가 하는 고민이 병원 안에서는 모두 하찮은 것들로 느껴졌다. 건강하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짐을 느꼈다. 


법의학자에게 벌어진 사건, 사고들보다 훨씬 좋았다. 매주 시체를 보며 떠올렸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너무 무겁지 않게 건넨다. 하지만 생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무척이나 경건하다. 자살에 관해 이야기할 때 특히 그렇다. 자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과 사실들을 제시한다. 단지 그의 생각뿐만 아니라 실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도 알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고 누구나 준비해야 하는데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의학자로서 바라보는 죽음, 의사로서 바라보는 죽음, 인간으로서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그에 대해 더욱 신뢰하게 해주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하는 일이라면, 말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하게도 내가 어떤 사고로 죽게 된다면 유성호 교수님이 검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 과학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병을 일으킬 만한 DNA의 싹을 미리 잘라내는 기술로 말이다. 그 말에 순간 섬뜩함을 느끼다가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아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감염자가 된, 또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숫자를 보자 기분이 이상했다. 안타까웠다. 빨리 진정이 됐으면 좋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 어떤 말을 남길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맞이할 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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