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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Feb 18. 2020

이야기가 나에게 찾아왔다

영화 <작은 아씨들>을 보고

내가 글 쓰는 걸 멈춘 것은 이제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해 쓴 글들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글이 아니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쓰레기일 뿐이다. 나쁜 의미에서의 쓰레기가 아니라 나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버려지는 나쁜 감정들을 말한다.


책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지난날 내가 썼던 글들을 열심히 긁어모아 읽어보았다. 처절했던 몸부림이 느껴지는 글들이었다. 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조금 더 현명해지고자 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도 읽고, 보고, 썼다. 그것은 글이라기보다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 몸부림을 책에 담자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웠다. 나의 쓰레기를 독자들에게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나의 그런 몸부림에 가까운 글을 읽어주고, 격려해준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지불하지 않은 선에서, 너그러운 마음에서 가능한 행동이었다. 만약 그 글들을 돈을 내고 보았다면 그들도 다른 잣대를 가져다 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것이 떠오르지 않는 긴 순간 동안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그것을 찾아낼 능력도 되지 않았다. 두려움도 있었다. 나의 글이 유료가 되는 순간, 봐줄 사람이 있을까, 쏟아지는 비난을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그런 생각들은 더욱 내 손가락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이라도 써보려고 애를 썼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글이더라도 계속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고민은 이어졌지만 답은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저지른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른 채. 한참을 빈 화면 앞에 앉아 이야기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빈 화면을 채웠지만 곧바로 전체 삭제가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도, 글을 계속 썼어도 계속 빈 화면이었다. 계속 지웠으니까.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한 작가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조 마치는 자신이 쓴 글임에도 친구의 글이라고 말하며 출판사에 투고를 한다. 글의 내용도 편집자의 요구에 맞춰 모두 바꾸겠다고 한다. 그녀조차 자신의 이야기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찾은 후 같은 출판사에 찾아가 당당하게 원고를 내민다. 더 이상 작가가 누구인지 숨기지도 않는다. 


끝내 그녀는 자신의 책을 손에 쥔다. 저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설레는 마음에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녀에게 이야기가 찾아왔듯 나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찾아왔다. 그 이야기가 조의 이야기처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이 온전히 나의 이야기가 되어줄지, 보는 이들에게도 그들의 이야기로 다가가 줄지는 써 봐야 알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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