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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Jan 04. 2020

장인이 되고 싶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를 보고

‘장인이 되자.’ 올해 다이어리에 내가 쓴 첫 문장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화려한 사람들이 아닌 자신의 일을 정성스럽고 능숙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무기력하다가도 자극을 받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나를 움직이게 했다. 


한동안 에세이를 보지 않았었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직업을 대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에세이를 많이 읽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서와는 달랐다. 자기 계발서는 위로 올라가는 법을 가르치는 책처럼 느껴진다면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는 땅속 깊이 들어가는 법을, 그 안에서 나무의 뿌리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싶기보다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미풍에도 흔들리는 불안한 탑을 쌓기보다 깊게 뿌리박고 오래 그 자리에 머무는 삶을 살고 싶었다. 


장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결국 지혜의서재까지 만들게 되었다. 내가 오래, 능숙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는 이런 나의 욕구와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동시에 충족시켜줬다. 차를 사랑하고 차와 단 둘만의 시간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대답과 같다는 걸 이 영화는 나에게 말해줬다. 


이 영화에는 차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온다. 포드와 페라리 회사의 회장과 직원들, 레이서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영화를 보고 나면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어떤 사람일지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포드 회사의 헨리 포드 2세는 재벌 회장이기 이전에 결국 차를 파는 사람이다. 차를 더 많이 팔기 위해 회사를 잘 운영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차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신뢰도 아무렇지 않게 깨버린다. 어렵게 어렵게 만든 포드의 스포츠카로 출전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헨리 포드 2세는 경기를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고 헬기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떠나버린다. 또 셸비와 했던 약속들도 상의 없이 깨버려 경기에 큰 지장을 준다. 


반면 셸비와 마일스는 차에 대한, 레이스에 대한 투철한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일만 정성스럽고 능숙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장인들은 같은 사람과 오래 일한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관계도 성숙해질 대로 성숙해졌기 때문에, 이미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일의 효율이 점점 더 높아진다. 결국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셸비는 몇 번이나 헨리 포드 2세의 변덕으로 마일스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그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할까 궁금했다. 무척 난처한 상황인데 과연 어떻게 할까. 나라면? 영화를 보는 동안 짧게 생각해봤지만 그저 난처해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외에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셸비는 솔직함을 택했다. 마일스에게 함께 할 수 없게 됐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준다. 같은 일이 또 한 번 발생한다. 마일스에게 이 사실을 또 말해야 하는 셸비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선택한다. 마일스는 실망한 티는 냈지만 셸비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조용히 물러난다. 그런 마일스를 보며 셸비는 그만의 기지를 발휘해 마일스를 레이서 자리에 앉히고 만다. 


차곡차곡 둘만의 신뢰를 쌓아가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실제 그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 영화 속 셸비와 마일스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 그들이 일을 하면서 하는 선택과 행동들이 바로 그들에 대해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들이 멋졌기에 그들도 나에게 멋진 사람들이 된 것이다. 


차에 대한 둘의 관심은 또 어떤가. 두 사람의 몰입과 몰입 속에서 보이는 표정을 훔쳐보며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다. 영화 <천문>의 세종과 장영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좋아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낼 때 보였던 표정과 같았다. 영화는 영 딴 판이었지만….(천문은 나에게 좀 지루하게 느껴진 영화였다)


자신들은 아마 모르는 표정일 것이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천진난만한 표정, 자연스러운 미소, 집중하는 찡그림 등등 온갖 매력을 만들어낸다. 어떨 땐 섹시하고 어떨 땐 귀엽고 어떨 땐 외모까지 잘 생기고 예쁘게 보이게 만드는 매력.


나도 내가 잘하고자 하는 일에 정진하고 노력하여 잘하고 싶고, 그래서 오래 즐겁게 하고 싶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을 풍기고 싶다. 외모가 아닌 삶에서 천천히 꾸준하게 만들어낸 매력을 갖고 싶다. 장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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