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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Mar 03. 2020

결국 다 지웠지만

겨우 일을 마치고 앉아서 쓸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부터 죽 글을 썼다. 집에 가기 전까지 계속 썼다. 하지만 집에 갈 때 노트북 화면은 텅텅 비어있었다. 다 지워버렸다. 


그렇다고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긴 이야기를 썼지만,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대로 늘어질 수는 없으니 시간을 좀 더 내야겠다. 


원래의 나였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마무리를 짓고 어딘가에 그 글을 올렸을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전체 삭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온라인에서의 글은 내가 지워버리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만 인쇄된 글은 내 마음대로 지울 수가 없으니까. 이미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수도, 이 세상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훨씬 더 신중해지는 것이다. 


내 손에서 완전히 떠나버린다는 것. 더는 내가 어쩌지 못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꽤 두렵고 무겁게 나를 누른다. 이것도 다 지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어쨌거나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걷기로 했고, 그 목적지에 다다르면 지금, 이 순간은 지나온 길이 될 것이다.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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