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즐겨보는 유튜브 콘텐츠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 김창완 아저씨(왠지 아저씨라고 불러야만 할 것 같아)가 나왔다. 20년 넘게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지 2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프로그램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에 12번 진행하는 아침 독서모임 가는 길에서 들은 적이 있다. 조금 늦으면 거의 다 도착할 때쯤 김창완 아저씨가 오프닝 멘트를 하고 있다. 이제 차에서 내릴 때가 됐는데 ‘아, 조금만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프닝 내용이 너무 다정하고 따뜻했다. 그날 독서모임 중에도 계속 그 오프닝을 떠올릴 정도로.
그 오프닝을 들으며 ‘설마 이거 직접 쓰신 건 아니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오프닝 원고를 직접 쓰셨다고 한다. 너무 놀랐다. 게다가 4년 전까지만 해도 라디오 시작 4분 전쯤에 원고를 작성하셨다고. 이게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작성했을 것 같은 내용이 아니었는데. 글을 쓰는 입장에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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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는 물었다. 그의 책을 읽어보니 글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었는데 혹시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서 실제로 밝아지신 건 아닌지, 그것이 글에 녹아든 건 아닌지.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그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 것 같다고. ‘아침’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준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 아침이 있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감사하다고.
반대로 진행자인 이동진 평론가는 심야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많이 우울해짐을 느꼈다고 했다. 그걸 듣고 의심했다.
‘아, 내게 아침이 없어서 점점 마음이 힘들어졌던 걸까.’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아침이 없었다. 나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1년에 두세 달 정도 좋아하는 아침 독서 모임에 참여할 때만 잠깐 내게 아침이 생긴다. 평소 나의 하루는 점심을 먹은 후 시작된다. 대신 밤이 길어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도록 두들기고 주물렀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만 무너지는 순간이 느닷없이 찾아올까 답답했는데 내가 잊은 아침 때문이었을까.
햇살을 좋아한다. 분명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를 내뿜는 아침을 좋아하지만 아침에 일어날 힘이 잘 나지 않았다. '아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나인데 그래서 여러 번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었다.
김창완 아저씨는 라디오를 진행하는 동안 꽃이 피면 제일 먼저 꽃을 보고 아직은 밤이 길 때 집을 나서서 늘 아침 길을 열었다고 표현했다. 라디오를 그만두고 자기도 모르게 어느샌가 다 피어버린 꽃을 보면서 이대로 아침을 포기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해 다시 라디오를 진행했던 때의 하루 일과를 그대로 시작했다고 한다.
다들 성공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말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일찍 더 많은 먹이를 먹는다면서. 하지만 김창완 아저씨는 자신이 겪었던 아침들에 경탄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아침을 가져보기를 해맑게 권한다.
"제가 만난 아침, 그 벅찬 아침을 진짜 청취자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아마, 차를 타고 다녔으면 많은 부분, 바람 냄새, 강물이 보이는 오프닝은 놓쳤을 거예요. 제가 아침마다 맨살로 부딪히는 아침은 이건 정말 나눌만하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단 하루도 나가는 게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생생한 아침을 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창완 아저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아침이 탐났다. 그가 그렇게 찬양하는 아침을 갖고 싶어졌다. 그가 느꼈던 것을 나도 느껴보고 싶어졌다.
내겐 아침 일찍 가야 할 곳이 없다. 아침 일찍 해야 할 일도 없다.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는다. 예전엔 내가 게을러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자책했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당장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아침을 갖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내 안에서 자꾸 내 마음을 습하게 만드는 것들을 아침 햇살에 바짝 말리고 싶다. 책과 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어둠을 아침으로 몰아내고 싶다. 조금씩 조금씩 내 삶에 아침을 드리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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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김창완 아저씨가 한 아침의 말들
"꽃피면 제일 먼저 꽃을 보고 아직은 밤이 길 때 집을 나서서 늘 아침 길을 열었었는데 그 며칠 사이에 강변을 가는데 강변에 개나리가 흐드러진 거예요. 쟤네들 며칠 사이에 저렇게 됐네. 그 바람에 아, 나 아침 맞으러 일어나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일과다. 그 생각이 들어 그날부터 다시 이제 아침 루틴을 고대로 다시 반복해요."
"제가 만난 아침, 그 벅찬 아침을 진짜 청취자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아마, 차를 타고 다녔으면 많은 부분, 바람 냄새나는, 강물이 보이는 오프닝은 놓쳤을 거예요. 제가 아침마다 맨살로 부딪히는 아침은 이건 정말 나눌만하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단 하루도 나가는 게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생생한 아침을 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미리 아침을 써놓는다는 게 청취자들을 배신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인위적이지 않은가. 요즘엔 글이 좀 길어지면서 어떤 때는 조크도 넣고 장황하게 얘기도 하고 너스레도 떨고 이랬는데 오늘 정말 할 말이 없다 이래도 '오늘 오프닝 못 썼어요' 하는 건 한 번 정도밖에 안 돼요.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오늘 아침의 이 비참한 거라도 뭔가 담아낼 게 있어요. 그런 날것의 아침이 참 좋아요. 그리고 이걸 꾸준히 하다 보니까 매일 아침이 얼마나 다른가 절실하게 느끼게 되니까요. 어제는 행복했던 분이 계실 거고 오늘 아침은 상황이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 모든 아침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훈련을 저도 하면서 청취자들도 그러길 바랐어요. 매일매일 새로운 나를 만나는 그런 계기로 만들고 싶어서 나름대로 오프닝에 애정을 많이 쏟았습니다."
"(라디오 방송) 끝나고 나서 내가 뭐라 그러냐면 여러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내가 그 소리를 하고 다녀요. 아침이 이렇게 나를 바꿔줬구나.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몰랐어요 진짜. 지금 생각하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 준 아침 방송에 고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