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 상태였는데 늘 하던 걸 했다. 꾸역꾸역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에도 큰 의지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먹었다. 목구멍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침을 힘차게 삼켜 넘겼다.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먹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점점 삶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 되었다. 처음엔 그렇게 느끼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니 아니었다. 객관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해결된 뒤에도 마치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다른 이유들이 내 앞에 다가섰다. 실제 벌어지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이번에는 다를 거야’하며 내 불안과 두려움에 힘을 실어줬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들었다. 힘들다. 하지만 나를 살린 것이 읽기와 쓰기였기에 어김없이 매달린다. 밤마다 손에 연필과 펜을 들어 수첩에 일기를 썼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나를 불안하게 할 것 같은 책을 골라내다 보니 결국 어떤 책도 손에 들지 못했다. 그래도 거대한 바위를 들어올리 듯 책을 들어 올려 내 눈앞에 두었다. 텅 빈 눈으로 같은 페이지만 계속 보고 있더라도.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사소한 일이란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작은 사건이 나를 삼켜 고립시킨다. 깊은 어둠 속에 나를 가둔다. 빠져나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늘 하던 걸 하고 먹고 쓰고 읽는 것이다. 그것밖에 몰라서.
오늘도 쏟아지는 잠을 이끌고 책과 아이패드, 키보드를 챙겨 나왔다. 릿터 50호와 강보원 에세이 <에세이의 준비>를 읽었다. 읽다 보니 도저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구토처럼 무언가 쏟아져 나와 급히 브런치 앱을 열었다. 입 밖으로 솟구치는 토사물처럼 글이 쏟아졌다. 이 글은 내 마음에서 쏟아진 토사물이다.
아무것도 망가지지 않았는데 모든 게 엉망진창인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정신을 차리려 노력해 본다. 다시 걷기와 읽기와 쓰기에 기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