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오빠'라는 단어의 힘

by Ann


소개팅을 했다. 오랜만이었다. 소개팅은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나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주제를 모르고 귀찮음 때문에 잠시 고민했지만 꽤 믿을만한 지인의 소개 이기 때문에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이상했던 건 상대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이었다. 왜 나와 동갑인 남자가 자신과 동갑인 여자를 소개받는다고 했을까. 그 사람은 나이 따윈 상관없는 쿨한 사람일까? 다른 남자들과는 조금 다른 사람일까?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일까? 나이에 맞게 성숙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초반 망설였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상대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도 소개받을 결심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는 기대가 내 안에 쌓여갔다. 만나기도 전에.


만났다. 어색한 프롤로그를 지나 조금은 안정적인 중반부를 향해 달려가던 중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였다. 자동차를 워낙 좋아해서 꽤 자주 차를 바꿨다고 했다. 철 없는 시절의 이야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책을 좋아하듯 차를 좋아하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가격의 차이는 생각할 게 아니었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별 차이가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 나는 이제 결혼을 하시면 그마저도 하기 힘드실 거 같은데요. 하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을 하곤 즐거운 상상을 한 듯 아, 그렇죠. 그런데 만약에 저보다 차를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오빠, 이걸로 바꾸자, 오빠, 저걸로 바꾸자 이럴 수도 있죠 하면서 웃었다.


나도 웃었다. 우리 둘 다 웃었다. 그는 자신의 상상이 재밌어서 웃고 나는 그가 재밌어서 웃었다. 그리고 우리의 결말이 너무 빨리 보이는 것이 순간 허무해서 웃었다. 하하. 난 뭘 기대한 걸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스쳐지나 가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했다. 나의 현재, 나의 자리, 나의 것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알게 되는 것이 그 의미이지 아닐까 하는 결론을 지으며 그의 차에서 내려 갑자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