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이 되면 진로 고민을 덜할 줄 알았다.
1. 즐기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2.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미래에 대한 조급함이 줄어들 줄 알았다.
3. 마음을 내려놓고 푹 쉬기로 다짐하고 떠났기에, 고민을 미룰 수 있을 줄 알았다.
1. 즐기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만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한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곳을 여행했다.
처음으로 매일 뭘 하고 놀지 고민했고,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이 계속 생겼다.
할 일은 많았고 시간은 부족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틈틈이 미래에 대해, 진로에 대해 고민이 됐다.
즐겁고 새로운 경험들이 가득했는데, 허전하고 붕 뜬 기분도 느꼈다.
항상 교육을 공부하고, 실습하고, 관련된 진로를 준비하다가, 그것들이 없는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단절된 느낌이었다.
많이 힘들긴 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즐거운 일이었음을 알게 됐다.
현실적으로는 한창 직업을 위해 집중하고 노력할 시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기분이라 가끔 불안했다.
즐겁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에 자꾸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내가 답답했다.
2. 미래에 대한 조급함이 줄어들었다. 이곳만 바라봤을 때는.
세상은 정말 넓었고, 삶은 정말 다양했다.
국적도, 나이도, 전공도 모두 다른 친구들을 잔뜩 만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정말 좁은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기에 공부하는 친구들이 멋져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꾸려가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고 어른 같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공부하고 여행하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한국,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을 바라보면, 바로 다시 조급함이 느껴졌다.
당장 돌아가자마자 들어야 하는 계절학기와 해내야 하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교생 실습, 임용 준비, 졸업 논문...
내가 이곳을 즐기는 동안 친구들이 모두 힘들게 해낸 일들이다.
나도 이것들을 잘 해내고 싶다.
얼른 해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기에 하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졸업을 하고 돈을 벌고 싶다.
일을 하고, 또 공부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긴 것 자체는 좋은데, 한국에서의 삶을 상상하면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는 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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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외국이라고 해서 다들 여유롭고 눈치 덜 보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비슷한 걱정을 하는 친구들도,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달랐던 점은 자기 전공을 당연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친구들, 바쁜 와중에도 요리, 운전, 여행을 하며 삶을 사는 친구들, 20대 후반에 대학생인 친구들이 많았다는 거.
특히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나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냥 모두가 친구가 되고 학생이 된다.
이런 차이에 대해 글을 더 적어보고 싶다.
지금 또 생각나는 건 친구들이 말하는 '열심히'와 '빠르다'의 기준이 한국에서의 그것과 달랐고,
초중고 학생으로서의 삶이 한국 학생들과 많이 달랐다.
3. 한국에서 벗어나 푹 쉬고 싶은 마음으로 왔지만, 자꾸 한국에서 나를 불렀다.
쉴 틈 없이 달리는 대학 생활을 하다 나름 큰 결심을 하고 교환학생을 왔다.
동기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교생 실습, 임용 준비, 빠른 졸업을 모두 미루기로 했다.
교환학생을 오면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즐기려고 했는데, 자꾸 고민할 일이 생겼다.
많은 초등교육과 친구들이 이미 조기 졸업을 했고, 임용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임용 준비를 위한 설문조사나 특강, 공동 구매를 진행했고, 친구들은 내년에 같이 임용 준비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다.
확실히 마음을 정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괜찮았겠지만, 나는 매번 흔들렸다.
특강을 들을지 말지, 인강을 살지 말지, 내년에 스터디를 할지 말지.
한 학기 휴학, 한 학기 교환학생으로 인해 학점이 애매하게 남아 정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천천히 정리를 해봤다.
내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은
1. 전공과 복수전공, 필수교양 학점 채우기
2. 이대부초 교생 실습...
3. 초등교육과 졸업 전시회
4. 여성학 졸업 논문 제출, 사회학 복수전공 고민
5. 한국사 시험
더 하고 싶은 일은
1. 좋아하는 교수님들 또는 좋아하는 전공의 강의 더 듣기
2. 교생 실습과 학교생활 기록하기
3. 도전학기나 대외활동, 동아리 활동
4. 그동안 배운 내용 잘 정리하기
5. 운동하고 요리하며 건강 챙기기
이외에도 영어 공부, 독서 모임, 아르바이트... 할 건 많다.
못 만났던 사람들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들어야 하는 학점이 생각했던 것(18학점)보단 적어서 무리하면 임용 병행도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럼 정말 무리일 것 같고, 교환학생을 오기 전의 대학 생활처럼 바쁘다, 정신없다는 말로 가득 찬 삶을 살 것 같다.
길지 않은 교환학생 생활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무엇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는 충분히 배웠다.
마지막 대학 생활은 그것들을 채우면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활기차게 지내보고 싶다.
그래서 결론은 내년에 임용 준비 안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져서 무리해서라도 빨리 졸업하고 임용 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교환학생으로 이미 뒤처졌는데, TO도 줄어드는 와중에 한 번 더 늦어진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제 못 하겠다! 안 하겠다.
학생으로서 내내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삶을 살면서 공부하고 싶다.
교사가 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하나하나 내려놓을 때마다 뭐가 이렇게 어려울까.
진로 고민을 할 때마다 고등학생 때의 내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느꼈던 불안함, 막막함, 동시에 느꼈던 자유로움과 조금은 살 것 같았던 느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나를 알고, 더 나를 믿고, 더 살고 싶다.
항상 어렵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해 왔으니, 많이 강해졌을 거라고 믿는다.
내년에는 정말 후회 없이 원하는 삶을 살자.
지금처럼.
2023.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