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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Dec 28. 2019

통대 생활의 마지막, 졸업시험

그리고 또다시 시작

 통대 이야기의 절반은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특히 2학년이 되고 나서는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만큼 매 순간이 귀하고 소중했다. 그리고 1년간 입시 공부를 하며 소망했던 2년간의 통대 생활, 아직 멀어 보였던 그 생활이 끝이 났다.


저녁 스터디 끝나고 바라본 11월 어느 날의 이대 국제관 5층 복도

 마지막 학기 들어서는 무엇보다도 졸업시험이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졸업 시험이야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되고 졸업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통역사로서의 커리어겠지만,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욕심은 어쩔 수 없다. 당연히 지난 세 학기보다 정기적인 스터디를 많이 하게 되었다. 비정기적으로도 시간 나면 동기와 간단하게라도 통역을 해보고, 농담도 통역으로 하고, 장난도 통역으로 치고, 그냥 하루가 통역으로 시작해 통역으로 끝났다. 같은 반 모든 동기들과 일주일에 세 번씩 단체 스터디를 했다. 사람이 많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생각처럼 효율적으로 스터디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여름방학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학기 중엔 부스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라서 일단 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고 모두가 함께 브레인스토밍 하듯 다양한 표현과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큰 공부가 되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남편 기다리며 복습 삼매경

 입시 때와 마찬가지로 졸시가 다가올수록 불안함이 계속된다. 사실 통대 입시를 시작한 이상 당분간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험 전후의 이 긴장과 불안은 몇 번을 해도 적응되지 않는 새로운 경험들이다. 졸시가 다가오면서 역시 '이 정도로 정말 될까...'싶은 의심과 '이러고 쉬고 있어도 되나...'싶은 불안함과 '그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교차한다. 마지막 학기라고 해서 순차 ab/ba, 동시 ab/ba 네 과목 중 완성되었다는 기분이 드는 과목은 하나도 없다. 모든 과목이 불안하고 미완성인 기분이다. 그러니 ba라고 해서 대충 할 수 없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졸시 일주일 전, 선배님들의 응원 듬뿍 담긴 합격떡

 졸시 준비만큼, '통대 라이프'라는 것 자체가 끝나간다는 것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일엔 끝이 있는 법이지만, 너무 하고 싶던 공부이기에 아쉬움은 여느 때보다도 컸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 것 같기도 하다. 공부가 제일 쉽다는 어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수업들도 모두 소중하지만, 동기들과 수업과 수업 사이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물론 이야기의 절반은 졸시 걱정이지만, 그래도 졸시 준비 막판에는 통대 공부를 하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남들이 보면 저런 얘기 하며 왜 웃지... 싶은) 시시콜콜한 수다와 잡담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순차 스터디 끝나고 집에 가던 어느 날의 예쁜 석양

 모든 수업 마지막 날 교수님과 함께 다 같이 사진을 찍으며 진짜 통대 수업이 끝나감을 실감했다. '시원'함은 없고 그저 '섭섭'함 뿐이었다. 졸시를 앞둔 우리에게 해주신 마지막 조언들을 통해 그간 수업에서 교수님들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셨는지 마음으로부터 느껴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고 하나를 놓치더라도 전체 흐름을 잘 파악하라는 것이 모든 교수님들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특히 나처럼 성격 급하고 타이트하게 따라가는 타입은 긴장해서 하나 놓치면 크게 당황하고 뒷부분에도 영향을 주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막판에는 보다 여유를 갖고 따라가는 연습을 많이 했다... 고 지금에서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단시간에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고자 노력했다.^^;;;


졸시 일주일 전 마지막 금요 스터디

 그런데 졸시 며칠 전부터 갑자기 코가 너무 막히고 목소리가 안 좋아졌다. 통역이다 보니 말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면 큰일이라 바로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감기는 아니지만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목소리가 온전하지 않았다. 받아온 약 먹고 잘 때도 마스크를 하고, 적어도 목 쓰는데 지장이 없도록 계속 신경 썼다.  인생에서 여러 번의 시험을 거치며 느낀 것이 당일의 컨디션이 좌우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 앞두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자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마침내 졸시의 날이 밝았다

 졸시 당일 목소리가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최악은 아니었기 때문에, 시험 응시에는 문제가 없었다. 막상 당일이 되니 딱히 떨리지는 않았고 약간 덤덤했다. 전날까지도 2년간 함께한 스터디 파트너와 여느 때처럼 준비해온 자료로 통역 연습을 했고 잠도 나름 잘 잔 것 같았다. 시험 응시하는 동안은 대기 중에도 전자기기 사용을 못 하기 때문에 약간의 텍스트와 순차 통역에 쓸 A4 용지 몇 장, 간식거리 약간, 물병을 준비하고 학교에 갔다. 오랜만에 1반 2반 모든 동기들이 한 공간에 모여 시험을 기다렸다. 서로 가져온 간식이며, 포도당 캔디며, 시험에 좋다는 것들(?!)은 다 나누었다. 

 시간이 되어 동시 ba부터 시작해 학번 순으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첫 시험인 부스실에 들어가기 전, 주제지 파악 시간을 갖고 부스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시험이 시작된다. 갑자기 학번을 이야기하라고 하시는데 평소 내 학번을 내 입으로 말해볼 일이 딱히 없어 순간 당황했다. 약 2초(3초?) 생각하다가 학번을 이야기했는데, 여기서 내가 시간을 지체했는지 학번을 말하자마자 바로 시험이 시작되었다. 깜짝 놀랐지만, 연설문의 앞부분은 이미 거의 기계적으로 연습이 된 상황이라 다행히 바로 따라갈 수 있었다. 동시 중한 이후의 시험부터는 주제지에 내 학번을 적어 두었다. 그리고 첫 시험 끝나고 나오며 느낀 것이 이어폰 줄을 여유 있게 풀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어서 이후에는 대기 중에도 이어폰을 목에 둘러 늘어뜨려 놓고 부스에 들어가면 바로 잭 연결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시험은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시험도 금세 끝이 났다. 여느 때처럼 시험 끝나고 나오면 아쉬웠던 부분만 계속 생각난다. 친구가 계속 잘했을 거라고 위로해줬지만 그날의 퍼포먼스는 나와 교수님들이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우리의 뒤풀이, 둘러앉아 만두 빚기

 시험은 끝났지만 결과는 2주 후에 나오기에 홀가분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2주를 보냈다. 동기들과 모여 만두를 빚으며 놀고 신나게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실수했던 부분이 생각나고, 남편과 다녀온 대만 여행 5일 동안에도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순간 쎄-한 느낌에 잡념에 빠지고 그랬다. 이상하게 저녁 10시면 졸려서 잠이 들고 새벽 3시쯤 잠이 깨서 새벽 5시까지 시험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떨어지면 재시험 보면 되고 모든 일은 적당한 때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이번에 끝내고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과 발표날을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며칠 전부터 혹시나 하고 계속 사이트에 들어가 결과 조회를 했다. 그리고 발표 당일, 원래 오후 2시에 발표가 날 예정이었기에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전에 운동을 하러 갔다. 운동 후 집에 가며 습관적으로 사이트에 들어가 조회를 했는데,


 갑자기 원래 없던 팝업창이 떴고, 순간 헉하며 얼떨떨해서 새로 고침으로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했다.


팝업창을 닫자, 과목마다 합격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불합격이면 합격여부란이 공란일 거라고 했는데, 모두 합격이라 쓰여있었다.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리고 다행스러웠다. 스스로 목표했던 대로 내년 2월에 졸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또 기쁘다. 난 동기들 중에 가장 잘하는,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성실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약속하고 계획한 것은 꼭 제때 하고자 노력하는, 어떻게 보면 앞뒤 꽉 막힌 사람이었다. 2년간 성실히 임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가끔 힘들고 지루하다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매 순간 벅차고 감사했던, 내가 하고 싶은 일임을 알고 보냈던 지난 2년 안녕, 나의 통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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