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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ug 04. 2023

잔인+선정+자극+혐오=범죄

책임감을 가지는 어른들이 늘어나길.

그 시기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혐오의 대상은 변한다.

노키즈존 관련 기사가 뜨면, 아이들에 대한 혐오, 아이 엄마들에 대한 혐오가 증가하고

노실버존 관련 기사가 뜨면 노인들에 대한 혐오가 증가하며

선생님 관련 기사가 뜨면 선생님 혐오

진상 부모 관련 기사가 뜨면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 대한 혐오

경찰 관련 기사가 뜨면 경찰에 대한 혐오 증가

여경 관련 기사가 뜨면 여경에 대한 혐오 증가

남성 관련 기사가 뜨면 남성혐오

여성 관련 기사가 뜨면 여성혐오

몸매 혐오

.

.

.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도대체 혐오가 아닌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나와 다르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혐오의 대상이 되는 시대다.  

혐오를 조장하는 자들은 그 혐오의 대상에서 자유로운가.

아니면 내가 혐오의 대상이니 남도 혐오를 해야겠다 이런 복수심 같은 것인가.

생각보다 군중심리는 매우 쉽게 조장된다.

세상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여, 나만 너무 힘든 것 같아. 난 쓸모없는 인간인 걸까 라는 생각에 오랜 기간 잠식되어 있는 사람들은 판단력이 흐려져 있어서 매체에 영향을 쉽게 그리고 많이 받는다.      


게다가 요즘은 자극의 시대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보지 않고 읽지 않는다.

사람이 죽고 피가 낭자하고, 야한 영상이 아니면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는다.

조회수에 생계가 달려 있는 사람들(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어떤 직업군인지 알 것이다.)은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 자극적인 영상을 접한 다수들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불을 보듯 뻔한 결과다.

바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묻지마 사건’들이 바로 그 결과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비난해야지 자극적인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다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조회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중에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현실적으로 회사에 소속되어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묻지마 범죄를 할 정도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미필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조회수 때문에 그런 영상들을 생성해 내는 것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아무나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

어느 정도 경쟁을 통해 선별된 영화와 범죄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본인들이 만든 영상들이 과연 오늘날 발생하는 범죄들과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공신력 있는 패널들끼리 모여 앉아 자극적인 살인사건에 대해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으로 송출할지 오로지 그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제목들은 또 어찌 그렇게 잔인한지.

살인하는 방법들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살인을 위해 어떤 물건을 사면 되는지, 살인 계획은 어떤 식으로 해왔는지, 살인은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그리고 증거인멸을 위해서 범인들이 시도했던 방법들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알려주고 있다.      

세상에는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고, 프로그램의 송출은 언론의 자유이며 각자의 사리 판단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세상에는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최근 발생한 묻지마 범죄들은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발생하며 그로 인한 희생은 오로지 범죄자에게만 맡길 것인가.      

그러면서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논의할 자격이 있는가.

잔인하고 야한 영화나 프로그램 그리고 게임광고까지! 청소년들에게 무책임하게 노출시켜

범죄가 만연하게 만든 사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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