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어두운 심리, 샤덴프로이데(2)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묘한 기쁨

by 강산

어릴적 유머일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동네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 프로그램을 정말 너무 싫어하셨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나쁜 놈들이라고 하셨다.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우리는,

업무 중 저지른 실수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고 싶고,

누군가가 내 약점을 언급할까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중적으로 행동한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웃음을 터뜨리고, 자신에겐 침묵을 허락한다.

이 모순된 태도 속에 인간의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타인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의도를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불행이 정당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인지적 과정에는 암시적 정보처리와 명시적 판단이 모두 작용한다.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불신, 혹은 가해자에 대한 동일시 같은 심리적 요인이 개입하면서 우리의 판단은 쉽게 왜곡된다.ㅍ

결국 우리는 타인의 과거 행위와 상황적 제약을 근거로 “그 사람은 마땅히 그런 결과를 겪어야 했다”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가장 은밀한 형태다.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은 때로 개인의 심리적 위안을 넘어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식 자리 나 사내 소모임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뒷담화하며 웃는 순간, 그 웃음은 단순한 풍자를 넘어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약점을 확인하고, 인간적인 허점을 공유하며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런 웃음이 공동체 안에서의 ‘비공식적 통합’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 웃음이 건전한 공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쉽게 조롱으로 변질된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결점을 감추려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나도 저렇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인 것이다.


일상의 수많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서 짧은 해프닝 같은 즐거움을 발견한다.

회사 복도에서 동료가 급히 가다 커피를 엎질렀을 때,

"저렇게 덤벙대다니, 나는 저렇게 덤벙대지 않아. 쟤는 덤벙대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군.”라는 안도감과 함께 짧은 웃음이 피어난다.

개그 프로그램은 이런 일상의 실패를 과장해 보여주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현상을 도덕적 성찰의 대상으로 다뤄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감정의 복잡성과 모순을 설명하며,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

즉, 샤덴프로이데는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계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 윤리학에서도 이 감정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감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약함, 비교의 본능, 그리고 성장의 여지를 동시에 마주한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불행을 비난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감정을 통해 나 자신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의 문제다.


타인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현상은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적 맥락에서도 기인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 속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교육, 직장, 사회 전반에 걸친 경쟁 구조는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며,

동시에 비교 속에서 자신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준다.

이런 구조는 사람을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 가두며, 결국 샤덴프로이데를 사회적 에너지로 재생산하는 토양이 된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남의 실패에서 웃음을 찾아야 할까?”

그 질문의 답을 완전히 도덕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웃음 속에는 단순한 악의뿐 아니라,

자신도 언젠가는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겸허함이 함께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바라볼 때 냉소나 조롱에 머무르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인간적인 약함과 연약함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의 시선은 비판에서 성찰로, 조롱에서 이해로 옮겨가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 선배가 부디 자신의 손톱 밑 가시에서 벗어나

조금은 넓은 시야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타인의 불행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인간다움을 볼 수 있는 시야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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