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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Sep 26. 2021

제주 밤바다

퀘퀘한 냄새, 악쓰는 아이의 울음소리, 남자의 고함소리, 여자의 비명..

남편과 부부싸움 끝에 맨발로 뛰쳐나와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다 보니 우리 부부처럼 싸우는 집이 많이 있는지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린다.


퉤!

아까 싸우다가 홧김에 입에 욱여넣었던 고무나무 잎을 뱉는다. 남편의 울먹거림이 귓가에 맴돈다.



소금기 있는 싱그러운 냄새, 끊임없는 파도소리, 데이트하는 커플들의 웃음소리, 수많은 별자리, 길가의 가로등보다 더 밝은 커다란 보름달..

밤바다를 보고 싶다는 아이들과 나온 바닷가.

지금의 이 순간이 진짜 내가 있는 곳이 맞는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몇 번이고 바다를 향해 악을 써 소리쳐본다. 사춘기 첫째 아이가 창피하다며 차로 숨어버리지만 그마저도 귀엽고 행복한 순간이다.


공황장애 치료를 위해 휴직을 하였다. 덕분에 남편은 가족들을 위해 혼자 일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한다.

힘들면 무조건 버텨야 한다고 평소 말버릇처럼 외쳤고,

내게도 그것을 강조했던 그는

지금 무조건 버티고 있다.


밤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온 집 앞 주차장에 반딧불이 한 마리가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남편에게 고마워 괜스레 갑자기 흐르는 눈물 아이들에게 들킬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마치 남편의 눈물방울, 땀방울 같은 수많은 별들이 박혀있다.


제주의 밤은 내겐 그런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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