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바람처럼 내 곁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하얀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올라 내게 머물기를 바랐어.
떠나지 못하는 구름이 비를 내리듯 그 바람이 내게 흐르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어떻게든 널 붙잡기만 하면 될 것 같았어.
바람은 어디로든 갈 수 있데.
언젠가 떠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무겁게 짓누르는 두려움이 널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지.
난 사랑을 한 게 아니야.
아무것도 내게 남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말이야.
넌 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많은 것을 기억했어.
사랑은 피할 수 있으면 피했어야 했나 봐.
널 붙잡지 말고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어야 했나 봐.
빗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이 내리는 너 때문에
자꾸만 네 흔적들이 지워져.
내 몸에서 빠져나가.
꽉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 사이 바람이 불어.
자꾸만... 내게로 네가 불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