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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Feb 10. 2021

김치김밥에서 찾아낸 행복의 의미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4년 만에 찾아온 아기천사로 인해 입덧을 10달 내내 했다.(아기 낳기 직전까지) 그래서 임신기간 내내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오직 입덧만 끝나길 바라던 기억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 입덧이 심했을 때도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내겐 '김치김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건 하나도 가미되지 않은 오직 물에 씻은 김치만 들어있던 김치김밥이 왜 그렇게나 좋았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없어요, 어머니'

입덧으로 지쳐있던 내게 시어머니가 물어보셨다. 정말 먹고 싶은 게 없어서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대답도 없다는 것만 반복했다. 시어머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맛이 조금 돌 수 있도록 묵은지를 싹 씻어서 '김치김밥'을 만들어주시겠다고 했다. 김치김밥이라... 밥도 못 넘기는 마당에 김밥은 먹을 수나 있을까. 까끌해진 입안을 혀로 훑으며 기운없이 작게 '네'라고 대답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치김밥을 먹겠다는 의사를 보이자마자 김치냉장고에서 묵은지를 꺼내 물로 씻어 길게 쭉쭉 찢기 시작했다. 헛구역질을 계속 하다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침대에 누워버렸고 시어머니께서 만들어내는 김치 찢는 소리를 눈을 감고 들었다. 스멀스멀 콧속으로 들어오는 김치 냄새는 입맛을 자극하는 동시에 헛구역질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혹시라도 며느리가 김치 냄새를 맡으면 역하진 않을까 걱정해서인지 추운 겨울날씨에도 창문을 열어 젖히고 도마 위에 무언가를 써는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의 칼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빈 속이라 허기가 살짝 느껴지던 찰나 눈을 떴다. 시어머님이 두고 간 쟁반이 눈에 띄었다. 작은 쟁반 안에는 시원한 얼음물과 김치김밥이 먹기 좋게 썰어져있었다. 하나씩 주워먹었더니 울렁거리던 속은 차츰 잦아들었고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서인지 입덧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신기했다. 난 먹덧은 아닌데?


오랜만에 찾아온 입덧의 평화라니. 나는 이때 김치김밥에서 처음 행복을 느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서 뚝딱 없는 재료로 급하게 만들어주던 김밥. 그 김밥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랑 웃으면서 보냈던 기억. 김밥 재료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맛만큼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까닭은, 그때 그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기 때문일까. 엄마의 김밥을 떠올리게 하는 담백하고 단순한 김치김밥 하나로 입덧 때문에 괴롭던 시간을 잠시나마 달래준 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으며 밥알 사이로 공기가 스며든 김밥을 심심하지 않게 톡 쏘는 맛으로 꾸며주는 김치의 맛을 음미했다. 짜릿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김치와 밥, 김의 삼박자라니! 행복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나의 파란만장하던 임신 기간은 출산을 하면서 대장정을 끝냈다. 출산함과 동시에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입덧 역시 끝났다. 입에 항상 거품 가득하던 침은 온데간데 없고 평소의 나로 돌아왔다. 아, 입덧의 끝은 출산이구나. 반드시 끝은 오는구나. 끝이 있다는 건 또 다른 시작이 있다는 건데, 입덧이 절정에 오르던 그날 먹었던 김치김밥은 이상하게 출산을 하고 나서도 그리웠다. 김치김밥을 먹으면서 입덧이 가라앉아서 좋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걸 만들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밤늦게까지 이어진 수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입덧은 끝났지만 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매일 잠과 씨름하며 피곤에 절여진 장아찌 마냥 헤롱거릴때 문득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김치김밥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잘 익은 김치가 밥알에 양념이 스며들어 마른 김에 촥~ 감겨 있을 때 입안에 톡! 무심하게 넣고 우물우물 씹을 때의 새콤매콤한 맛이란! 지금은 사라진 입덧이 그리워지고 그 때 담소를 나눴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가득~채워준다. 고부 관계에 대해 묻는 지인들은 나를 신기해했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길게 나눈 적도 많았다. 결론은 그냥 좋음. 


요즘도 아기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시는 시어머니께 김치김밥 이야기를 종종 했다. 어머님이 입덧 심할 때 해준 김치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가끔 생각난다고. 그러다보니 시어머니의 루틴은 서울 올라오실 때 내가 좋아하는 김밥집에서 사오는 일반 김밥으로 시작해, 집으로 내려가실 때는 김치김밥을 말아놓고 가시는 걸로 마무리된다. 어머님이 말아주신 김치김밥을 한조각 떼어내어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행복으로 벅차오르는 기분. 그래서 김치김밥이 너무 맛있고 좋아요, 어머니. 어머니 입가엔 미소가 그득하다.


분명한 건 '김치김밥'을 먹으면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 그리고 이 김치김밥을 만드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기대된다는 것. 김치김밥을 정성껏 말아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이나 즐거워보이신다는 것. 행복이란 두 글자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만큼은 그래야겠다. 김치김밥에서 찾은 행복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중.


아, 김치김밥이 또 먹고 싶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현재는 낚시꾼 2세 밤쭈가 생겨서 낚시는 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낚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쭈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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