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말 그대로다.
단 한 번도 그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던 토박이 삶을 살았던 내 고향이 사라졌다. 아니 이제 곧 사라질 시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재개발의 바람이 드디어 밀려와 많은 집들이 부서지고 북적북적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은 하나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이 몰고 온 새로운 터전을 닦기 위한 철거 때문이다. 이미 재개발이 시작된 옆동네는 '길 없음' 표지판이 빨갛고 굵은 글씨로 철거의 위험을 알렸고 곧 철거되는 골목들은 높은 벽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낯설었다. 여긴 어디일까? 분명 내가 살던 곳인데... 아니 살았던 곳인데..
그 동네, 그 집에서 자그마치 20년을 넘게 살았다. 나의 유년기는 북적거리는 시장을 거쳐 조금 시장에서 떨어진 곳으로 갔다가 다시 시장 근처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인생이 담겨있던 정겨운 동네슈퍼부터 카페, 맛집 그리고 유년기, 사춘기, 성인... 결혼 전까지 살아왔던 우리 집은 폐허가 되었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 골목은 할렘화가 진행되어 온갖 벌레와 쥐들이 사람 대신 자리를 메웠고 그들은 다시 철거로 인해 살아갈 공간을 잃어갔다. 그렇게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덕에 엄마 아빠와 결혼하고 5년 만에 가까이에 다시 살게 되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씁쓸해졌다. 고향을 잃어본 적 없는 남편은 이런 나의 허탈감을 위로해주며 토닥여줬다. 고향, 내가 살았고 그 속에 무수한 이야기들과 추억이 깃든 동네. 때론 벗어나고 싶었지만 때론 안식을 전해주던 공간이 주는 의미는 내게 굉장히 특별했던 것 같다. 그땐 몰랐지, 그저 재개발이 된다 안된다 말이 많이 나오던 때에도 부모님도 나도 설마 하고 넘겼으니까. 그러고 딱 십 년 후 재개발은 추진되었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을 떠나가기 바빴다.
이주할 당시 임신 중이었고 굉장히 입덧이 심해서 어딘가 멀리 나가지 못하는 신세였다. 가끔 가는 친정집에서 입덧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이유는 집이 주는 안정감, 공간이 주는 익숙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는 자연스러움. 집 앞 골목 끝에는 초등학교 친구네 슈퍼가 있었고 그 건너편엔 자주 가던 미용실이, 그 옆으로는 중국집이, 또 그 옆으로는 과제하러 가던 작은 카페가 있었던 골목. 그 추억... 한 문단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긴 고향.
한 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어떤 건지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하고 보니 더욱 그러한 곳이 간절해진다. 변치 않고 묵묵하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곳. 그런 공간이 이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사라진다니. 이십 대 무려 매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며 느꼈던 감정들이 솟아올랐다. 몇 백 년의 풍파 속에서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탈리아의 어느 거리, 영국 런던의 작은 골목, 프랑스 파리의 헌책방 거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이름 모를 거리마다 다녀오고 일기를 적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건 이런 의미구나.
토르 영화 중 아스가르드인들을 이끌고 우주선에 탑승한 토르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가는 곳이 아스가르드라고 했던 대사를 기억해봤지만, 역시 내겐 영화는 영화였구나 싶었다. 실제로 고향이 사라진다는 그 상실감은 상상 이상으로 공허하고 허무하기 때문이다. 전엔 오래된 집이 싫어 웃풍이 심해 또 전기세가 많이 나와서 불평불만도 참 많이 하기도 했는데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다는 걸 눈앞에 본 지금은 미묘하고 오묘한 기분이 든다. 고향이 사라진다. 내가 살던 고향이, 이사 가고 첫눈을 보며 좋아했던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떠나고자 했던 곳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모두 바뀐다.
누군가는 좋겠다며 로또를 맞았다고 부러워했지만 그건 부모님의 집이고, 결론적으로는 부모님 역시 편하게 지내실 수 있게 되셨지만 씁쓸해하시기도 했다. 토박이로 쭉 살아왔던 곳들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이제 사진 속에서나 가끔씩 그려볼 수 있을까. 슬럼화가 되어버린 골목에서 텅 비어버린 집들을 잠시 보고 왔을 뿐인데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무한 공허가 찾아왔다. 카메라로 여기저기 골목을 찍어뒀던 사진들을 찾아보려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아 좀 더 아쉬웠다.
내 아이가 좀 더 커서 엄마의 고향은 어디야? 라고 물어본다면 어디라고 대답해줘야할까. 지겹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던 어느 오후, 어느날. 이제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여전히 그 동네 그 골목 그 집에 모두 담겨있는데. 사라진 흔적 위에 올라갈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여기가 엄마의 고향이었단다, 엄마가 놀던 골목 그 어디쯤이야, 라고 해야할 웃픈 이야기.
나의 살던 고향이 사라지고 있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현재는 낚시꾼 2세 밤쭈가 생겨서 낚시는 쉬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낚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쭈우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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