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지 잡으러 갔지만... 현실은 피라미
임신, 출산, 육아 3단 콤보를 직격탄으로 맞이하며 나의 근육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물속을 걸어가는 내내 멀뚱멀뚱 남편의 손을 꽉 잡고 생각했다. 이준이랑 매일매일 건강하게 육아로운 시간을 보내려면 체력이 더 탄탄해져야겠다고. 그리고 다시 낚시를 시작하려면 역시 체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낚시채비를 잔뜩 늘여놓고 정비 중인 남편을 바라봤다. 땀에 절은 남편은 몹시도 더워 보였다.
'여보 땀 닦고 합시다~'
'오~ 센스쟁이!'
남편에게 수건을 건네고 오랜만에 찾은 우리의 아지트를 스윽 살펴봤다. 지난번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물이 한 번은 적어도 뒤집어졌겠구나... 여기서 2년 전에 커다란 꺽지를 여러 마리 잡았었는데! 2년 전 잡았던 대왕 꺽지가 아른거려 휴대폰 속 사진을 뒤적뒤적였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꺽지 낚시채비를 마치고 내게 핑크 낚싯대를 건네주었다. 이번엔 남편 낚싯대 정비할 차례!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핑크로 낚시 장비를 챙겨주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이지 않나 싶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낚시를 함께 해올 수 있는 거겠지만)
오랜만에 잡을 꺽지 생각에 남편과 나는 두근두근 설렜다. 낚싯대를 잡고 꺽지가 있을 법한 돌이 있는 쪽으로 던졌다. 꺽지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콱' 물어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물었다고 느낀다면 콱 들어 올려야 잡을 수 있는 어종이기도 하다. 그런데... 낚시를 오래 하다 보면 '촉'이 자주 발동하게 되는데, 처음 던져서 나오지 않으면 계속 꽝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어? 꺽지 없네...? 어? 또 걸렸네?
서른 번쯤 바늘을 던졌을 때 남편과 나는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꺽지 대신 피라미'라고 외쳤다. 아니다 싶을 땐 이렇게 빨리 포기하고 접는 것도 좋다. 취미는 취미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취미가 아닌 일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편과 나는 의견을 서로 맞추고 아니다 싶을 땐 바로 접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그런데 딱 지금이 그런 때였다. 몇 번 던지고 던지고... 뜨거운 여름날 오후는 꺽지를 잡겠다는 욕망보다 빨리 접고 바로바로 입질을 느낄 수 있는 '피라미'로 채비를 바꿨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남편과 나의 '피라미 낚시'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느나모드로!
역시... 믿고 낚는 재미가 있는 '피라미'였다. 도깨비 채비로 바꾸고 떡밥을 꾸덕하게 개어내 던져주니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꺽지가 강력한 한방이 있다면 피라미는 몹시도 잔망스러운 떨림이 있어 매력적이다.) 한 번의 챔질을 해주고 나서 탁 들어 올렸을 땐 이 구역 왕인 것 같은 비주얼의 피라미가 떡하니 잡혔다! 금강휴게소에서 맛봤던 피라미완 또 다른 느낌의 피라미. 같은 어종이라고 해도 환경에 따라 조금씩 크기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데 역시 잡던 곳에서 잡는 이 재미는 따라올 수가 없나 보다!
이렇게 한 마리 잡고 나니 두 마리씩 잡기도 하고 엄청 큰 한 마리를 잡기도 하면서 넣으면 나오는 '느나모드'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래, 이 맛에 피라미 낚는 거 아니겠어?! 인생도 이렇게 넣으면 걸리는 날이 많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계속 낚는 나를 보면서 피라미를 떼러 와 주기 바빴다. (본인이 낚시를 하다가도 다시 달려오고 물길을 헤치고 뛰어오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나도 이제 뺄 수 있다고!'
'어느 세월에 뺄 건데 빨리 빼고 다시 낚자'
라고 말하고 으... 하면서 겨우 빼내는 나를 보던 남편은 아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나와 반대방향으로 낚싯바늘을 던지고 서포터를 자처했다. 남편의 판단이 현명한 것임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낚는 건 잘하겠는데 빼는 건 참 어려운 건 왜일까... 하는 사이 계속해서 내 낚싯대는 분주하게 떨렸다. 잔망스러운 입질을 해대는 피라미를 열심히 들어 올리는 동안 여름휴가를 이렇게 알차게 보내는 것에 감사해졌다.
육아하느라 하고 싶은 거 잘 못하는데 이 순간만이라도 즐기자!
땀을 뻘뻘 흘리던 남편은 낚는 족족 피라미를 바늘에서 빼줬다. 남편이 빼주면 다시 내가 피라미를 낚고 피라미를 빼주면 다시 낚고 그렇게 오랜만에 느나모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열 마리... 쉰 마리쯤 되었을 때 해가 뉘엿뉘엿 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훅훅 뿜어내는 무더위 속에서도 나와 남편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더울 틈 없이 피라미를 낚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랄까. 근사한 호텔에서 보내는 호캉스, 시원한 에어컨 틀어놓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홈캉스도 휴가를 보내는 좋은 방법이지만 나는 남편과 좋아하는 낚시를 같이 할 때 휴가를 제대로 보낸 것 같다. 야외에서 하느라 더 덥고 땀범벅에 목도 마르고 엉망이지만 어쩐지 더 즐겁고 행복할까?
지난 5월에 처음 피라미를 다시 잡았을 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입질이 그렇게 짜릿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걸 밀도있게 즐기는 요령이 필요하다. 지금 나와 남편이 딱 그렇다. 밀도있게, 쫀쫀하게 최대한 이 시간을 아주 아주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누가 먼저 잡느냐 때문에 서운해하던 지난 날의 나는 온데간데 없고 남편이 먼저 잡으면 축하해주고 뒤이어 나도 바로 잡으며 신나게도 보냈다. 잔망스러운 입질이라 귀여운 피라미낚시. 아이가 좀 더 큰다면 함께 잡아보고 싶은 생각에 더 신나게 낚시를 즐기고 말았다. (낚시 하는 시간동안 아이랑 함께 해주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남편과 나의 육아로운 일상, 남편은 회사라는 전쟁터로 나는 육아라는 전쟁터로! 전우애 불타는 남편과 다시 한 번 피라미낚시를 하니 에너지가 샘솟았다. 꺽지의 입질이 그리워 찾아간 아지트에서 결국 피라미로 낚시통을 가득 채웠지만 스트레스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간 후였다. 그렇다, 우리의 삶이 늘 정해진 방향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정해진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기대되는 게 또 인생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종종 이렇게 낚시여행이 필요하다는 걸 남편과 확인해보며, 나의 조황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아들아, 엄마 김태공으로 다시 부활했어!
민물낚시를 처음 시작한다면, 낚시가 어렵다고만 여기고 있다면 시작하기 참 좋은 피라미낚시. 여름이 다 지나가버리기 전에 한 번쯤은 손끝으로 느껴보는 건 어떨까?
피라미낚시 성지 금강휴게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pinkwriter/122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아기랑 떨어져 낚시를 하고 온 이야기들을 엮는 중입니다!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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