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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May 28. 2021

피라미낚시 성지 금강휴게소로 떠나자!

작가 아내와 회사원 남편의 은밀한 취미생활 <어쩌다 낚시>

작가 아내와 회사원 남편의 은밀한 취미생활 <어쩌다 낚시>

아기를 낳고 벌써 8개월. 나와 남편의 낚시 이야기는 잠시 멈췄다. 자주 가던 낚시 카페도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 낚시 메이트인 남편과 함께 하던 우리의 취미는 육아와 함께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8개월이 훌쩍 지났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가는 곳도 한정적으로 바뀌다 보니 내 기분, 마음, 정신은 온통 육아가 중심이 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나의 감정에도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늘은 점점 마음속에 자리를 잡더니 자꾸만 자신의 영역을 더 확장하려 들었다. 이럴 수는 없어! 음울한 기분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해줄 수 없고 좀 더 즐겁게 육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에 그늘을 두지 말자! 그 원망이 어디로 가겠어, 내가 정신 차려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직 하루 종일 케어가 필요한 아들은 고작 8개월 아기니까. 근데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아기만큼이나 아기 엄마도 케어가 필요한 법이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인지라 한계가 한 번씩 찾아오는 거겠지만, 괜스레 울컥하고 눈물샘이 터질 것 같은 날들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따듯하게 맞이하지 못하는 날도 많아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시동을 걸기 시작해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루 종일 아들과 씨름해가며 시간을 썼던 터라 옆에서 축 늘어진 어깨로 아기를 보고 있던 나를 남편이 톡톡 두드렸다.


있잖아, 우리 이번 당신 생일에는 낚시 갈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과 앉아서 노는 아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 시선은 흔들렸고 아들 앞에서 눈으로 남편을 살짝 쳐다봤다. 남편은 진지했고 표정엔 단호함이, 말투엔 다정함이 섞여있었다. (사실 남편의 입에서 낚시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두근두근 가슴이 너무 뛰었다. 하지만 평온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보통 이런 때 남편은 상당히 고민을 많이 해보고 결정해둔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뭐라고? 낚시? 그럼 쭌인?

엄마한테 하루만 아니 반나절만 부탁드리고 다녀오자

그래도 괜찮을까...?

기분이 묘했다. 8개월 내내 떨어져 본 적 없는 아들인데 시어머님께 온전히 맡기고 낚시를 간다라... 가고 싶지만 선뜻 나서서 갈래!라고 할 수 없는 나의 복잡한 마음을 읽은 남편은 다시 한번 말했다.


자주 가는 거 아니고 아주 오래도 아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닮아서 잘 있을 거야

그래도... 어머님께 어떻게 그래 걱정도 되고... 떨어져 본 적 없어서 걱정되고...

그렇다. 쭌인 배고프거나 응아가 마렵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크게 나를 찾지 않고 잘 노는 좋은 아들이다. 근데 8개월 동안 한 번도 반나절 이상 떨어져 본 적 없는 나에겐 모험이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걸 아직 상상을 못 해봤는데 싶어 고민에 빠졌다. 시어머님께도 죄송하고 철없는 엄마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하지만 낚시는 너무나 가고 싶었다. 작년에 임신하고부터 간 적 없었으니 거의 2년 만의 일이니까.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나의 집콕 생활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으니 지금의 나를 힐링시켜주는 게 맞지 않을까. 리프레쉬가 필요한 거 아닐까. 하지만 준이가 날 찾으면 어떻게 하지... 제일 하고 싶었던 걸 하러 간다는 것과 아이와 떨어진다는 것 사이에서 엄청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네가 우울해있는 거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생일선물로 반나절! 딱 반나절이야

남편은 이미 시어머님께 잘 설명드리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의 불도저 같은 실행력이 이럴 땐 참 좋구나. 모든 짐을 싸고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남편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많이 미안하고 철없는 엄마가 된 것 같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좋았다. 남편이 내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쉽게 가자고 하지 못하는 건지 알고 있었으니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렇게 금강휴게소로 향했다.


알다시피 금강휴게소는 대한민국 휴게소 중에서도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곳으로 손꼽힌다. 피라미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피라미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아이 없이 둘이서 타는 차도 오랜만이었지만 아기띠와 카시트로 가득한 차 안에서 편하게 조수석에 올라있는 것도 반가우면서 뭔가 이질적인 상황이 기분 좋은 설렘을 만들어냈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기분이 왔다 갔다 했지만 남편과 금강휴게소에 도착한 순간 깨달았다. 물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드는 순간 온몸에 잠자고 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서서히 깨어나는 느낌. 찌릿찌릿하고 전율이 일었다. 그렇다, 이건 낚시에 대한 나의 지독한 그리움이었다.




금강휴게소 커플 포토존 / 내 시그니처 핑크 낚시대


금강휴게소의 나무데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이런 하트 포토존이 나온다. 나무데크를 따라 파라솔 자리가 즐비했지만 코로나 여파로 모든 좌석은 다 치워진 상태였고, 오늘부터 1일이라 적힌 하트 포토존은 조금 썰렁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곳이 바로 피라미 낚시의 성지! 나무데크 중간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되고 차로도 갈 수 있어서 이미 낚시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처음 가본 낚시터였지만 어쩐지 나는 여기서 그리움의 냄새를 마구 맡았다. 탁 트인 금강이 눈앞에 펼쳐지니 늘 아기띠를 메고 있던 어깨 위로 누군가 톡톡 힘내자고 날 위로해주는 기분이었다. 오늘부터 1일, 그러니까 오늘부터 다시 낚시 1일?!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서 편하게 옷을 입고 낚시도구를 챙겨 왔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해방된 기분이었다. 조금 미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나와있다는 게, 온전히 낚시꾼으로 있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거 꿈은 아니지? 혼자 감탄하는 사이 남편이 피라미 낚시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오랜만의 피라미 낚시라니! 남편은 아이를 보느라 정신없던 나를 대신해 낚시도구 전부를 챙겨 왔던 모양이었다. 내 시그니처인 핑크 낚싯대는 남편이 육아로 바쁜 나를 대신해 잘 관리해줘서 여전히 핑크 핑크하고 사랑스러웠다. 유난히 더 예쁘게 빛나는 내 핑크 낚싯대... 진짜 나 낚시하는 거야?


 

왼쪽부터 도깨비 채비, 드디어 첫수를 시작으로 계속 잡았다


피라미 낚시의 기본이 되는 채비는 파리 채비(마치 물 위에 피라미들이 좋아하는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해서 잡는 것)와 도깨비 채비(낚싯줄 끝에 떡밥을 넣어 물속에 집어하는 형태)로 나뉘곤 하는데, 우리는 물속에 들어가서 하는 게 아니므로 도깨비 채비로 준비했다. 그리고 떡밥을 적당히 꾸덕한 상태로 만들어 꾹꾹 눌러 담아 물속으로 던졌다. 1년 8개월 만의 캐스팅(물속으로 바늘을 던지는 것)이 어색해 몇 번 삐그덕 거리자 남편이 전처럼 웃으면서 날 약 올렸다.


에이~ 김태공 많이 죽었네~ 자세가 그게 뭐야 캐스팅 연습 좀 많이 해야겠다?

참나! 몸이 아직 덜 풀려서 그래! 두고 봐~ 보여준다 내가!


오랜만의 남편이 놀리는 소리에 자극을 받기 시작했다. 몇 번 던질 때 자꾸 낚싯줄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삐그덕 거리고 너무 성급하게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바로 코앞에 도깨비 채비를 던지는 실수도 했다. 그렇다, 몸이 아직 덜 풀렸다. 출산 이후 이렇게 움직이고 서있고 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어떻게 던졌더라. 몸은 다 기억한다던데 난 바보인가. 출산하고 몸보신으로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닌데 벌써 다 까먹어버린 건 아니겠지. 옆에서 채비를 하던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던지는 법을 다시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니 릴을 풀고 던져야지..? 김태공씨 정신 차리라고!

나도 알거든?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나 바보인가? 잠시 주춤하다가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릴을 풀고 자세를 잡았다. 결과는? 첫수 성공! 그래, 이거였다. 릴을 잠시 풀어놓고 떡밥이 담긴 부분을 잡아 원하는 위치에 던져 낚싯줄에 풀어지게 하는 것. 그리고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게 딱 다시 릴을 잠가주고 챔질(낚싯바늘에 피라미 입이 걸리도록 살짝 움직여주는 것)을 조금씩 해주면 파르르 떨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촥~! 감아올리면 그렇다. 어김없이 피라미는 잡혀 올라온다. 그렇게 1년 8개월 만에 본격적인 나의 피라미 낚시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한 마리, 그다음은 두 마리, 다시 두 마리, 한 마리, 두 마리... 그리고 쭉쭉 이어서 나오는 피라미들을 감상하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피라미를 낚을 때마다 씻겨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온전히 이 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 낚시를 좋아하고 즐기는 낚시꾼 김태공이 되었다. 그래 이거야 이거! 촤르륵 파르르르 촤르르륵 파르르 낚싯줄 끝으로 느껴지는 움직임이 포착되면 어김없이 탁 낚아채 끌어올렸다. 내기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피라미는 던지면 조금 후에 올라오는 반가운 친구가 되었다.


이거였나 봐... 이게 그리웠나 봐.

출산 이후 고장 난 것 같은 나의 눈물샘 덕분에 눈물이 왈칵하고 올라왔다. 나로 돌아온 것 같은 이 그리움은 피라미의 입질에 걸려 파닥파닥 자꾸 올라왔다. 바늘에 걸린 피라미가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 남편 없이는 피라미도 만지지 못하던 나는 조용히 피라미를 딱 잡고 빼냈다. 내가? 그래 내가. 물고기를 잡을 줄만 알았던 내가 빼는 것이 조금 수월해진 기분. 조용히 웅얼거려 내 읊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남편은 자꾸만 걸리는 채비 때문에 이것저것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은 못 봤을 테니 최소 이건 놀림감 몇 년짜리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물어봤다.

캐스팅 잘 하시네! 하도 낚길래 신기해서 와봤어요. 여기 잘 잡힙니까?

여기요? 꽤 잘 잡히는 것 같아요! 특히 피라미요

신기해하던 아저씨는 금방 자리를 떴고 나는 피라미 입질을 기다리며 기분좋게 낚시를 즐겼다. 이 즐거운 기운은 왠지 오래갈 것만 같은 예감이 팍 들었다. 이 짧은 시간, 잠깐이나마 내가 나로서 낚시를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 날씨는 무척 꾸물꾸물해졌고 우리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철수하고 차에 올라 어디론가 향했다. 남편이 화장실 갔다가 오면서 사다준 뜨끈한 어묵과 국물이 들어가니 차가워진 속이 뜨끈뜨끈하게 다시 채워졌다. 이맛에 낚시하고 이맛에 먹는거였다. 아 맛있어!




비가 그치고 나서 흐린 날씨였기 때문에 강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지만 정면으로 맞는 강바람도 오랜만에 낚는 나의 마음을 식히진 못했다. 그냥...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나? 간단한 채비만 들고 왔던 우리였지만 내게 금강휴게소는 고급 호텔보다 더 좋은 호사스러운 바캉스를 누릴 수 있게 해 줬다. 그리움의 냄새, 그리움의 손맛, 그리고 내 낚싯줄에 걸려 파닥여준 금강의 피라미들에게 감사를! 무엇보다 잠시나마 나를 아기엄마가 아닌 나로 온전히 있게 해준 남편에게 피라미를 바친다!(물론 잡은 피라미들은 모두 다시 방생해주고 왔다.)❤ 쭌아, 엄마 있지! 엄마 죽지 않았더라!!!!


파리채비와 도깨비채비가 궁금하다면 전편 보고 올것!

https://brunch.co.kr/@pinkwriter/82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아기랑 떨어져 낚시를 하고 온 이야기들을 엮는 중입니다!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핑크쟁이김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pinkauthor

핑크쟁이김작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GLGONiTt5j_ReogQsF1_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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