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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Sep 08. 2021

우리 집거실엔 아들 집이 있어요

아빠가 만들어준 나무집

남편이 만든 아들의 나무집, 조명을 달아줬다


지난 주말, 남편이 혼자 시댁이 있는 문경에 내려갔다. (참고로 남편은 코로나 백신을 모두 맞았다.)


금요일 밤에 가서 토요일은 하루종일 연락이 뜸하더니 일요일 아침이 돼서야 다시 돌아왔다. 남편이 낑낑 거리며 집으로 가져온 건 다름 아닌 아들의 집! 거실 면적에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부피가 꽤 큰 나무집이었다.


아들을 안고 내려갈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낑낑거리면서 열심히 나무들을 날랐다. 연결부분만 나사로 튼튼하게 다시 박으면 된다고 했다. 집에 안 쓰던 나무도 가져간다고 하더니 이걸 만들려고 했나 보다. 그렇다. 남편은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아버님이 워낙 손재주가 좋으셔서(짚신도 꼬실 줄 아셨고, 어머님 댁 테라스에는 아버님이 직접 만드신 나무그네도 있다) 그런 걸까, 남편도 뚝딱뚝딱 뭔가 종종 만들어내곤 한다.


연애 시절에는 같이 나무 테이블도 만들러 가본 적이 있고, 생일 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헬로키티)를 모티브로 해서 종이 서랍장을 만들어준 적도 있다. 이번엔 아들의 집이었다. 그냥 봐도 탄탄해 보이는 나무집은 틀만 있는 것이었는데 꽤 부피가 커서 성인 여자 한 명은 거뜬히 들어가고 남는 사이즈였다. 당연히 우리 아들은 자기 집인 걸 아는 건지 들어가서 여기저기 살펴보고 만져보고 하더니 소리를 연신 꺄꺄 질러댔다. 너무너무 좋다는 뜻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자마자 남편의 짙은 갈매기 눈썹은 실룩실룩 움직였다.


남편이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는 나무집의 결만 봐도 알 수 있다. 각 나무의 겉표면이 아주 곱기 때문이다. 얼마나 사포질을 했는지 알 순 없지만 손에 매끈하게 만져지는 나무의 감촉이 이를 증명한다. 부드러운 나뭇결을 따라 만져보다가 기둥을 잡고 일어나 보니 단단하게 연결된 나무집이 무척 튼튼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만들기까지 남편은 수십 번 뜯어보고 각도도 재보고 사포질도 수십 번 했을 것이다.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아들 집을 꾸며주기로 했다 :)

남편과 지난번에 나눴던 대화 도중 내 유년시절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책을 좋아해 엄마가 사주신 모든 동화책, 위인전 등을 읽을 때 나는 꼭 건조대 밑으로 들어가 읽었다. 이불이 건조대 밑까지 가려주니 나만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촉촉한 이불 사이에 엎드리고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녹음된 동화책을 들으며 책을 넘겨봤던 기억. 그렇게 책을 여러 권 읽다가 건조대 밑에서 잠들곤 했다. 촉촉한 빨래의 공기, 감촉, 은은하게 퍼지는 섬유유연제의 향까지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의 이 기억은 나이가 든 지금도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나만의 힐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잃어버린 동심을 다시 끌어올려주기도 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게 만들어준다. 추억은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남편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아버님이 만들어주신 나무 썰매를 타고 꽝꽝 얼어붙은 논두렁 위를 누비고 다녔던 기억. 남편은 자신의 아들에게도 그런 유년의 기억을 선물해주고 싶어 했다. 그게 나무집으로 시작될 줄은 몰랐지만?


밋밋한 느낌에 귀여운 알전구를 달아서 장식해보면 어떨까 제안했더니 남편은 서둘러 은은한 빛의 알전구를 샀다. 로켓 배송으로 온 알전구를 아들의 나무집 위에 고정시켰다.(모든 건 남편이 직접 고정시키고 달았다.) USB 충전 방식이라 전원을 연결해주니 아기자기한 아들의 나무집이 꾸며졌다. 물론 앞으로 더 손 볼 곳이 많지만, 아들은 아빠가 만들어준 나무집을 들어가더니 한참을 혼자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네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


'이준아~ 이준이 아빠가 만들어준 집이 좋아요?'

돌 끝 아기인 아들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진 모르겠지만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아들의 나무집이 거실에 설치된 지 일주일째. 아들의 낮잠 타임은 늘 이 나무집에서 이루어진다. 나도 아들과 한참 놀아주다가 잠이 드는데 깨어나서 엄마 얼굴을 작은 손으로 어루만지는 아들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몽글몽글 벅차오른다. 벌써부터 이 집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장난감도 가져다 놓고 뒹굴뒹굴하며 노는 중이다. 


자신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기쁜 걸까, 나무집의 안락함에 빠진 걸까, 아빠가 만들어준 집이라서일까. 궁금한 점이 참 많지만 아직 옹알이로 대화를 하는 아들에게 답변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들의 환한 미소 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왔다. 아빠육아는 엄마와 똑같을 수 없다. 하지만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난 아들과 몽글몽글한 추억 쌓기를 해봐야겠다. 남편이 지어준 아들의 나무집에서. 


우리집 거실엔 아들 집이 있어요 :)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남편이 주로 낚싯대를 점검하고, 아내는 필요한 짐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 아주 오랜만에 아기랑 떨어져 낚시를 하고 온 이야기들을 엮는 중입니다! 아기가 좀 더 크면 같이 낚시방랑가족이 되는 게 꿈인 낚시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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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pin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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