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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Jun 07. 2019

아버님의 낚싯대엔 추억이 있다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아버님의 낚싯대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


우리가 같이 낚시를 경험했던 건, 신혼여행지에서였다. 신혼여행 코스 중 하나였던 선상 낚시는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같은 날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 온 커플끼리 모여 다니는 신혼여행이라니! 자유여행만 고집했던 내겐 신선한 방식의 여행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커플끼리 앉아 낚싯줄을 내렸지만 다들 못 잡아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상 낚시 코스였지만 서로 사진 찍으며 노는 커플이 점점 늘어났다. 선상 낚시는 이렇게 하는 거랍니다 느낌 정도의 맛보기 코스였기도 하고,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 메인이 아닌 코스였기 때문에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날의 메인 코스인 스노클링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하하호호 웃으며 낚시를 하는 커플과 달리, 눈에 불을 켜고 낚시를 하는 커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나와 남편! 그렇다, 우리였다. 처음 같이 해보는 낚시여서 신기했고, 남편과 나는 이상하게 낚시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조잡한 낚싯대였지만, 그때는 뭐라도 낚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마냥 좋아했던 우리가 순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편도 나도 집중하며 낚시를 하던 결과, 갑자기 내 낚싯대에서 입질이 왔다. 입질이 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낚싯대를 들어 올렸고, 이름 모를 베트남 바다의 물고기가 바늘 끝에 달려 올라왔다.


현지 가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다들 박수를 치며 신기하다고 놀라던 사람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그때 맛보게 된 손맛은 아주 짧았지만 강렬했다. 낚싯대 끝으로 생명의 떨림이 느껴지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 홀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잡고 나서 물고기를 다시 릴리즈(방생)해줬지만 기분 좋게 선상 낚시를 마칠 수 있었다. 내가 낚시로 물고기를 낚는 동안 남편은 울렁거리는 속을 비워내느라 힘겨워했고, 아내인 나흔들리는 배 위에서 물고기를 평온하게 다시 낚았다. 우리는 그렇게 동상이몽의 선상 낚시를 경험했다.(남편이 뱃멀미를 한다는 걸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신혼여행에서 낚았던 이름 모를 물고기 때문에 낚시를 취미로 하게 된 건 아니다. 우리의 낚시는 2017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과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만나면서 신기했던 건, 나를 온전히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는 마음을 부모님 외의 존재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아버님이셨다. 내가 만들었던 TV 프로그램들을 꼬박 다 챙겨보셨고, 내 이름이 텔럽(엔딩 크레디트와 같은 말)에 올라갈 때면 꼭 캡처해두셨다가 보내주시기도 했다. 내 모든 것을 인정해주시고 가치 있게 봐주셨던 아버님께 더없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님의 애정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지금도 아버님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고,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아버님을 떠올리면 슬픈 것보단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은 이유는, 취미를 낚시로 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신 분이셨으니까.


남편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낚시는 지금처럼 낚싯대로 하는 것이 아닌, 족대를 이용한 몰이법으로 잡는 것이었다. 족대 몰이법이란 그물에 나무막대가 연결된 족대를 도랑 같은 곳에 들어가 물고기를 한 곳으로 몰아서 그물을 들어 올려 잡는 방법이다. 더운 여름날 어김없이 시댁 근처 물가에서 족대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한 남편은 아버님의 물고기 잡는 방법을 좋아했다. 여느 시골 분과 달리 친구 같은 아빠셨던 아버님에 대한 일화는 남편이 연애시절 항상 해줬던 이야기이다. (예전부터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친구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물고기를 잡았던 기억은 남편에게 낚시를 할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아버님이 본격적으로 낚시를 하시게 된 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지내실 때였다. 평생 일을 손에서 놓으신 적이 없었던 아버님은 본인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이 크셨다. '아들아,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을 해봤는데, 찾다 보니 이런 게 있더라. 집 근처 물가에서 낚시를 해봤는데 몇 마리 못 잡았지만 이렇게나 크고 튼실해' 아버님이 선택하신 취미는 '낚시'.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낚싯대를 사고, 장비를 준비해 종종 집 근처로 낚시를 하러 나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은 손재주가 정말 많은 분이셨다. 이것저것 뭔가를 엮고(짚신 만들기 고수), 만들어내는 걸 참 좋아하셨다. 손재주가 좋으신 분이셨기 때문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낚시를 하시면서 금방 낚시 고수가 되셨다.(물가에 갔다가 너무 많이 잡으셔서 물고기를 다시 풀어주신 적이 더 많다고 한다.) 손재주가 좋은 아빠를 둔 아들이었던 남편 역시 집에서도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고, 아버님처럼 되기 위해 이것저것 무언가를 만져보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내가 아빠의 심부름을 통해서 이런저런 것을 몸소 체득했듯이, 남편도 아버님께 낚싯대 종류와 낚싯바늘에 낚싯줄을 메는 방법, 찌나 먹이 등을 고르는 방법 등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도 낚시의 매력에 조금씩 이끌려갔다.


그렇게 남편은 낚시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아버님의 낚싯대를 들고 낚시를 하러 가는 일이 늘어났다. 낚시를 하러 가서 남편은 아버님이 보고 느끼셨을 풍경을 배경 삼아 민물낚시를 했다. 혼자 아버님의 낚싯대로 낚시를 다녀온 남편의 손에 물고기가 가득 들려있을 땐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렇게 남편의 낚시를 가는 횟수가 늘어날 무렵, 나도 낚시를 같이 해보고 싶어졌다. 이때부터 우리의 취미가 자연스럽게 낚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서 낚시를 가던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바로 커플 낚싯대를 준비했다. 지금은 핑크색 낚싯대로 낚시를 주로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버님 낚싯대와 비슷한 디자인의 낚싯대로 낚시를 시작했다.


우리가 초반에 샀던 낚싯대를 보고 있으면, 밤새 어떤 낚싯대를 사야 할지 고민하며 검색하던 남편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민물 낚싯대도 종류도 여러 가지에 용도별로 조금씩 굵기가 다르기 때문에, 낚싯대를 구매할 때는 용도에 맞는 것을 사야 한다. 낚싯대는 강도 셀수록 크고 무거운 어종을 잡는데 좋고, 강도가 약하고 잘 휠수록 작고 가벼운 어종을 잡는데 쓰인다. 우리는 민물낚시용으로 사용하기 좋고, 적당한 어종을 잡는데 무리가 없는 낚싯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남편이 피땀 눈물을 흘려가며 공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고심 끝에 고른 커플 낚싯대로 우리는 종종 시댁에 내려가 아버님을 뵙고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처음 낚시를 했을 때는 생각보다 많이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행하던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낚시를 해보기도 했고, 선상 낚시도 해보며 낚는 즐거움을 느꼈지만, 처음 해보는 민물낚시는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잘 잡히지도 않고, 잡혔다가 놓쳐버리기도 하고, 캐스팅을 했지만 낚싯바늘이 건너편 나뭇가지에 엉켜버린다랄지... 잡히지는 않고 애꿎은 낚싯바늘만 끊어져 계속 없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겪었던 낚시와는 사뭇 다른 성질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아버님과 남편은 왜 민물낚시를 좋아하시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잡히지 않는 물고기에게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낚시할 때도 게임하거나, 운동할 때 나오는 헐크 모드로 내 인격이 바뀌었기에 남편은 정말 힘들어했다.)


마음에서 분노가 일어나긴 했지만, 우리의 낚시는 어느덧 원래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취미로 자리를 잡아갔다. 남편과 낚시를 하면 할수록 남편은 나보다 더 많이 잡고, 더 많은 입질을 느꼈다. '캐스팅도 완벽했는데, 왜 난 안 잡히는 거지?' 생각하며 이내 뾰로통해져서 남편을 보고도 휙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 분노는 왠지 모르게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서운한 감정은 쌓여갔다. 지는 걸 못 참는 성격이 한몫했고, 그렇게 되자 낚시를 하면서 다투는 횟수가 늘어났다. 씩씩거리며 굳은 표정으로 다시 돌아가면 아버님은 언제나 따뜻한 말을 해주셨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많이 잡겠다는 욕심이 줄어들었다. 언젠가 낚시에서 '꽝'을 친 후에 돌아간 내게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가야, 낚시는 낚을 거란 생각을 하고 가는 것이 기본이지만 놓아줄 줄 아는 것도 터득해야 해. 낚시를 하러 갔을 때 욕심을 부리면 잡히지 않고 욕심을 버리면 잡히게 된단다. 완급 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 다음에 갈 땐 마음을 조금 풀어놓고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 대신 제대로 던지는 연습을 해보렴.'


아버님의 조언에 격한 공감을 하고, 화를 냈던 것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집으로 돌아갈 때 남편은 아버님처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낚시 자체를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같이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같이 낚시를 해도 혼자만 즐거워하는 것 같아 화가 났고, 나만 못 잡는 것이 어찌나 참을 수 없던지 다 미워 보였다고 말이다. 남편은 아버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면서, 조금 더 낚시를 재미있게 즐겨보자고 말했다. 외로움을 느꼈을 나에게 앞으로는 던지는 포인트나 캐스팅 방법 등을 옆에서 알려주겠다고 말이다. 마음을 겨우 추스른 후 나는 남편에게 너무나 미안해졌다.


그 이후 남편은 약속대로 내 옆에서 꼼꼼하게 캐스팅하는 방법, 자세 등을 봐주었고,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덕분에 나는 낚시에 다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캐스팅을 할 때 너무 낮게 던지거나, 높게 던지면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돌에 끼어 끊어진다는 것을 몸소 체득했다. 남편도 남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점점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낚시를 하면서 느꼈던 허무함과 씁쓸함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낚싯대가 갑자기 활처럼 휘더니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땐 마침 릴링(릴로 낚싯줄을 감으면 루어가 움직여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을 하던 중이었다.


릴을 감아보니 낚싯바늘 끝에는 검은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민물의 미니 야수(?) 꺽지였다! 꺽지는 공격성이 강한 어종이라 자신의 바운더리(자기가 지키는 구역)에 침입했다고 느껴지면 어김없이 공격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런 꺽지가 내 릴링에 반응하고 잡혔다니! 크기는 작아도 묵직한 입질에 나는 드디어 민물낚시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생명의 떨림,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너무 강렬하고 때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첫 꺽지를 낚은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을 숨길 수 없어서, 바로 돌아가 아버님께 꺽지의 손맛에 대해 이야기를 마음껏 해드렸다. 어머님은 며느리가 낚시를 한다는 소식에 놀란 눈치셨지만, 아버님은 웃으시면서 내 무용담을 재미있게 들어주셨다. 그렇게 나의 꺽지 낚시는 아주 강렬하면서도, 참을 수 없는 기쁨을 선사해줬다. 어떤 일을 하건 기다림 끝에는 꼭 보상이 오는 것처럼 낚시도 계속 연습하고 간절히 바라다보니 막상 낚게 되면 그 이상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첫 꺽지의 강렬한 입질과 손맛은 남편과 나를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실제로 그 이후로 남편보다 더 많이 꺽지를 잡을 때도 있고, 잡지 못하더라도 이상하게 즐거워졌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아버님을 뵈러 갔다가, 낚시를 하러 가는 시간을 더 많이 늘리기 시작했다. 아버님의 낚싯대로 낚시를 하기도 하고, 때론 아버님이 잡으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면서 '낚시'로 인해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낚싯대로 남편은 여전히 낚시를 하러 가곤 한다. 커플 낚싯대가 있지만 남편은 아버님이 생각날 때마다, 보고 싶을 때마다 혼자 물가로 향했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 가는 남편이 얄밉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제 나는 남편의 시간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나와의 낚시도 즐길 줄 아는 남편이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방법 역시 '낚시'인 것을 알기에.


'아빠 낚싯대로 낚시를 하면, 그 물가에서 서서 한참 낚시를 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이나. 아빠가 바라봤던 풍경을 보면서 낚시를 하고 있으면, 아빠가 더 생생하게 그려지곤 해.'

아버님의 낚싯대로 낚시를 하는 남편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나 역시도 그 물가에서 낚시를 하셨던 아버님의 잔상이 어렴풋 떠오르곤 한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질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우리에겐 아버님의 낚싯대가 그리움을 채워주는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할 때,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낚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남편도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남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채워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산 낚싯대로 취미를 만들어가신 아버님.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는 방법으로 아버님의 낚싯대로 낚시를 하게 된 남편. 아버님의 낚싯대를 깨끗하게 닦아 다시 릴에 낚싯줄을 감고 물고기를 낚았을 때, 남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버님이 처음 자신을 위해 산 낚싯대로 생생한 생명을 낚았을 때의 기분은 어떠셨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남편과 빨리 낚시가 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우리에게 낚시는 운명의 실타래처럼 얽히고 얽혀있다가 아버님의 낚싯대로 인해 비로소 조금씩 풀리며 제대로 시작된 것이라는, 운명론적인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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