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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Aug 16. 2019

내 이름은 김태공 with 낚시원정대_1부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낚시하면서 생긴
나의 또 다른 이름


나이가 들수록 이름이 하나씩 늘어간다. 아빠가 지어주신 이름, 엄마가 지어주신 애칭, 동생이 날 부르는 별명, 남편이 부르는 이름,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 며느리, 새언니...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이름은 나를 규정짓는 도구이면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표식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의 자식일 때는 딸이란 이름으로, 남편의 옆에 있을 때는 아내, 시댁에서는 며느리, 일을 할 때는 작가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이름.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이름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칭하는 고유 대명사이다.


시댁에서 며느리, 손부(손주 아내), 질부(조카 아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주로 내가 불리는 호칭은 이름과 작가이다. 내 이름으로 불릴 땐 나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아서, 작가로 불릴 땐 글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작가로 불리는 걸 더 좋아하긴 한다.) 누군가가 나를 내가 소속된 위치에 해당되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오롯이 나 자신을 인정해주고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것. 이것은 존재 자체를 존중받는 기분이다.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불리는 것은 단단한 안정감을 주고, 그 안정감은 때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두려움 없이 맞서게 해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누구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로 받아들여주는 것은 자존감을 올려주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친정과 시댁에서 나를 부르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다. 강태공이 아니고 김태공. 애교쟁이도 아니고 무려 김태공이었다. 물고기를 잘 잡는 사람을 보통 강태공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김씨이니 김태공. 누구의 딸이나 아내, 며느리가 아닌 김태공으로 불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데는 낚시가 한몫했다.

 

낚시꾼에게 김태공이라는 칭호는 강호의 세계에서 무림고수라는 이름이 붙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 이름이 내게 붙여졌다는 것에 나는 경이로움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무려 김태공이라니, 낚시를 더 잘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더해지면서 전보다 더 남편과 낚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의 낚시를 더 활발하게 해주는 낚시원정대가 만들어졌다. 낚시원정대는 평소에 바다낚시를 좋아하시던 작은아버님과 가끔 낚시를 해본 적이 있는 막내작은아버님, 생애 처음으로 낚시를 접하는 도련님, 낚시를 취미로 즐기는 남편과 나(김태공)까지 5명으로 구성된 낚시팀이다.

  

오롯이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데, 낚시원정대까지 만들어지니 상상 이상의 행복감이 밀려왔다. 남편과 나, 그리고 식구들이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구성원으로, 낚시로 진짜 가족이 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 그날은 얼음낚시의 시즌 끝에 다다른 마지막 날, 가족이 모두 모여야 하는 설날 연휴의 일이다.


설날의 가장 큰 행사가 끝나고, 오후부터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설거지까지 모두 끝난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던 내게 남편이 먼저 낚시를 가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심심해하는 나를 보고 데려가야겠다고 말했다.(센스쟁이!) 그렇게 우리는 잠든 사람들 틈에서 슬쩍 낚싯대와 얼음낚시에 필요한 간단한 채비들을 챙겨서 바깥으로 나왔다.


며느리라는 이름에서 잠시 벗어나, 남편과 낚시를 즐기러 가는 그 시간은 가뭄에 쩌억쩌억 갈라진 땅 위로 내리는 단비 같은 휴식을 가져다주었다. 촉촉하게 내리는 비로 갈라진 땅은 열기가 식어 내리고, 갈라진 부분은 비와 함께 뒤섞여 다시 단단한 땅으로 바뀌는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있는 내 주변을 남편이 낚시를 통해 조금씩 채워주고 있었다.



낚시 짐을 정리하고 낚시를 하러 가는 길에 작은 아버님 2분과 도련님이 같이 가겠다며 따라나섰다. 그렇게 급 낚시원정대가 결성되었다. 시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낚시터는 댐에 의해 만들어진 작은 호수 같은 곳이다. 수심은 대략 3미터 내외로 얼음이 투박할 정도로 두텁게 얼며, 매서운 겨울바람이 다리 밑을 지나가는 바람길에 있는 곳이라 얼음낚시를 하기엔 딱 좋은 곳이다.(얼음이 한 번 얼면 잘 녹지 않음) 그래서 우린 이곳을 늘 얼음 오아시스라 부르곤 한다.

 

낚시원정대와 함께 간 얼음 오아시스엔 맹렬했던 겨울 날씨는 가셨지만, 여전히 두 뺨을 할퀴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덕분에 두텁게 얼어붙은 얼음은 쉽게 녹아내리지 않았다. 그렇다. 낚시 하기에 딱 좋은 날씨, 완벽한 조건이었다. 낚시터에는 설날 연휴를 만끽하러 온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낚시 원정대 멤버들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얼음구멍을 뚫는 남편의 수고로움이 더해져 낚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니, 근데 얼음낚시도 할 줄 알아요?’

‘네….(어색한 고개 끄덕임)'

‘작은 아빠, 저렇게 수줍어 보여도 진짜 낚시꾼이에요. 순진한 얼굴에 속지 마세요’

‘그래? 일단 잡아보자. 잡아보면 알겠지!’


사실 그때까지 아버님과 남편 이외에 내가 낚시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왠지 모를 어색함에 살짝 굳어있었다. 낚시할 때 내 본모습을 보시고 놀라시진 않을까, 낚시가 잡히지 않을 때 극과 극으로 바뀌는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덕분에 낚시원정대 멤버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건 추운 날씨보다 관계 속에 생기는 어색함이었다. 어색함을 밀어내기 위해 얼음낚시 준비를 돕는 사이, 남편은 우리가 자주 쓰는 낚싯대를 인원수에 맞게 준비해두었다. 낚싯대의 종류는 낚싯대 끝을 보고 떨림을 느끼는 끝 보기 낚싯대 2대와 물 위에 떠오른 찌를 보고 하는 찌 낚싯대 2대로 총 4개가 준비되어있었다. 모자란 1개의 낚싯대는 작은아버님이 따로 준비해오신 걸로 대체되었다.


따로 가져온 낚싯대 외에 나머지 4개를 성격에 맞게 세팅해주는 남편의 센스에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남편과 숙부님은 찌낚시용 낚싯대를, 나와 도련님에게는 끝 보기용 낚싯대를 준 것이다. 내가 놀란 이유는 성격에 맞는 낚싯대를 준 남편의 혜안 때문이었다.


좌) 끝보기 낚시 전용 낚싯대 채비 / 우) 찌 낚시 전용 낚싯대 채비


도련님과 내가 사용할 끝 보기 낚싯대낚싯대 부분이 잘 휘어지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해서, 빙어의 입질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물고기를 낚아채는 손맛이 있다. 빙어가 달리면 낚싯대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고, 낚싯대 끝이 활처럼 휘기 때문에 빙어 피딩 타임(먹이 먹는 시간, 가장 많이 잡히는 시간대)에 딱 맞게 간다면 빙어의 기특한 입질을 바로바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입질이 좋아서 끝 보기를 좋아하는데, 처음 낚시를 해보는 도련님에게도 딱 맞는 타입이었다. 사실, 얼음낚시 초보자가 하기엔 끝 보기만 한 게 또 없으니까. ※ 빙어 피딩 타임은 보통 이른 새벽, 늦은 저녁이나 랜덤인 점은 알고 가자!


숙부님과 남편은 손맛은 덜하지만 비교적 여유롭게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찌 낚싯대를 선택했다. 수심에 맞게 조절한 찌가 물 위에 동동 떠있다가 물고기가 미끼를 물어서 입질을 하면 순간 쭈욱 물속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여유롭게 기다렸다가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낚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보통 어느 정도 낚시를 해본 사람은 찌낚시를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유를 알고 찌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으니까.  


각자의 특징이 확연하게 다른 두 가지 타입의 낚싯대를 장착한 낚시원정대! 

드디어, 본격적인 낚시원정대의 첫얼음낚시가 시작되었다.




※ 김태공이 된 작가 아내가 전하는 메시지

- 낚시원정대가 생겼으니 더 재미있게 낚시를 하자.

- 낚시는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할 때 더 재미있다.

- 끝 보기도, 찌 낚시도 모두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

- 낚시는 경쟁이 아니라, 같이 낚는 것이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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