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 초보 낚시꾼 부부의 취미성장기 <어쩌다 낚시>
낚시원정대의 빙어로
만든 요리는 대성공!
낚시에서 느나모드(인 앤 아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넣으면 나온다는 입질 모드를 뜻하는데, 게임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연속콤보 같은 것이다. 테트리스 게임을 하다가 연속으로 블록을 깨부술 때의 짜릿한 쾌감! 크리티컬이 작렬하는 그 순간! 느나모드(인앤아웃)가 바로 그러하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일필휘지 하고, 사진을 찍는 족족 인생 샷이 나오고, 광고 기획자가 낸 아이디어가 미친 듯이 히트를 치는, 카피라이터가 만든 한 문장이 사람들의 뇌리에 속속 박힐 때의 희열 정도랄까. 그보다 더한 감동이 바로 인 앤 아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낚시는 오래 하고 낚시하는 곳의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이 대체로 잘 낚는 편이지만, 어복이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 터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낚시 프로그램에서 집어맨(뱃멀미로 인해 미친 듯이 구토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이 어느 날 잡어맨으로 둔갑해 엄청나게 잘 잡는다던가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러하다. 정말 신기하게도 낚시를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신기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처음 해본 사람이 왜 터지는 경우가 많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별 기대가 없기 때문에, 초심자가 얻는 행운이랄까.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가 없기 때문에, 자만하지 않으며, 일단 시도해보는 것부터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보면 낚시원정대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경험할 대상이 누구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낚시원정대의 빙어낚시가 시작되었다. 생애 처음 낚시를 해보는 도련님과 어느 정도 실패의 쓴맛을 경험하고 빙어낚시에 취미를 들인 남편과 나,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작은아버님.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낚시원정대 멤버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낚시원정대 멤버들은 모두 정해진 자리에 앉아 낚시를 동시에 딱! 시작했다. 남편과 나, 작은아버님은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어서 순조롭게 시작했는데, 도련님은 처음 해보는 낚시여서 얼음구멍에 빙어 낚싯바늘을 붙여버리는 불상사를 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도련님의 얼굴에서 나는 첫 빙어낚시의 쓰디쓴 실패를 기억해냈다.
‘저 망했어요ㅠㅠㅠ 제 마음대로 안돼요ㅠㅠ’
‘괜찮아요! 대신 이제부터 구멍에 닿지 않도록 바늘을 넣어주셔야 해요!’
늘 남편이 내게 해주던 것을 이젠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 준다는 것이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신입에서 막 올라간 사람이 밑에 후임을 두고 알려주는 마음이랄까. 여전히 남편에게 배울 것이 많고 도움받을 것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얼음구멍에 붙은 낚싯바늘을 조심스럽게 떼어내서 빙어 낚싯대를 던지는 방법을 천천히 알려줬다. 도련님의 눈빛이 그렁그렁한 느낌은 나만 느낀 건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찌 낚싯대에서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빙어를 낚은 건 내 자리에 뒀던 낚싯대에서 일어났다. 참으로 기특한 입질이었다. 툭툭~ 끝을 툭툭 쳐대는 이 미묘하고 짜릿한 입질은 대충 몇 마리가 달렸을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빙어낚시를 하다 보면 한 마리가 잡혔을 때와 여러 마리가 잡혔을 때, 그리고 입이 아닌 배나 등, 꼬리에 걸렸을 때 입질이 다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통 툭툭~ 파르르 떨릴 때 느낌이 짧게 끊어진다면 한 두 마리이고, 묵직하게 툭툭 계속 친다면 여러 마리가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 유난히 파르르 파르르 낚싯대 끝이 떨려온다면 그건 입이 아닌 다른 부위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설레는 마음은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 낚싯대를 건져 올렸다. 옳지! 두 마리였다. 첫 시작이 좋았다. 기특한 입질을 경험하고 빙어 입에서 미끼와 바늘을 떼어 통에 담아줬다. 낚시원정대의 눈빛이 처음과 달라진 것을 느끼기 시작한 건, 바로 또다시 느껴진 입질 때문이었다.
미끼를 문 빙어의 입질은 기특하다. ‘어머, (제가) 또 잡았네요.’
‘또? 아니 맨날 낚시만 했어요? 잘 잡네?’
작은아버님들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느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으레 이렇게 잡아왔다는 듯이 기쁜 표정은 드러내지 않고 ‘여기가 명당이네요!’라며 빙어를 떼어냈다. 표정을 숨기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쩐지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어 졌다. 더 큰 감동과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 남편과 갈고닦았던 실력이 '나름 고수'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게, 빙어를 잡을 때마다 세어 나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입술을 꾹 물고 낚시에 집중했다.
'두 마리요!'로 시작된 나의 입질은 점점 기승전결 중 전까지, 절정에 달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남편은 내가 잡은 빙어를 떼어주면서 자신의 낚싯대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도련님은 입질이 오지 않는 빙어를 원망하고 있었다. 16년 인생 통틀어 좌절을 맛보고 있다며 입을 삐죽 내민 도련님을 보니, 괜히 안쓰럽기도 하고 쓰담쓰담해주고 싶어 졌다.
충분히, 원망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낚시를 하다 보면 하루 종일 입질이 오지 않아 허탕을 칠 수도 있고, 빙어가 잘 잡히는 곳에 가도 몇 마리 못 건지고 올 때도 있다. ‘물고기를 낚는 것’이 정답이긴 하지만, ‘물고기를 낚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실패하며 배워가는 것이 더 많아지니까.
느나모드(인 앤 아웃)여야 할 빙어낚시에서 입질이 없다니, 애써 추운 날씨를 뚫고 나온 도련님의 축 처진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도련님에게 슬쩍 낚싯대를 잡는 방법을 다시 알려주고, 끝을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 빙어는 작은 물고기이니 섬세한 떨림을 느껴야 하는데, 한 번 파르르 낚싯대 끝에서 떨림이 느껴진다고 바로 꺼내면 안 된다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밀당이 필요한 것처럼, 빙어가 낚싯바늘을 툭 치면 한 번 낚싯대를 튕기듯 올렸다가 내려주고 하는 스냅이 필요하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련님은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빙어의 기특한 입질을 느끼게 되었다.
‘진짜 그렇게 하니까 잡혔어요!!! 저 낚았어요!!!! 빙어 두 마리!!!’
낚시를 잘하는 사람은 그날 가장 많이 잡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잡은 티를 많이 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잡은 티를 내는 사람에게 더 많이 잡았다는 것을 듣게 되고, 그렇게 인식이 되어가는 거니까. 말없이 잡고 계시던 작은 아버님은 조용히 통에 빙어를 담아두셨고, 가장 신난 도련님은 잡을 때마다 외치기 시작했다. ‘나 빙어 또 잡았어요!!!’라고.
이날 가장 많이 잡은 사람은 물론 남편과 나였지만, 주인공은 우리가 아닌 ‘도련님’이었다. 처음 낚시를 해보고 입질을 맛보고, 몇 마리 잡지 못했지만 한 마리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낚시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2시간 동안 잡은 빙어는 수치로 대략 200마리 정도! 이렇게 낚시원정대의 첫 빙어낚시는 아주아주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낚시원정대의 큰 수확은 ‘나에 대한 인식’과 ‘나의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낚시로 어색했던 사이가 가까워지고, 서로 몰랐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인사만 주고받았던 낚시원정대 멤버들과 끈끈하게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겼으니, 나에게 낚시는 더할 나위 없는 가족과 나를 이어주는 것이 되었다.
‘낚시 진짜 잘하네! 강태공이 따로 없어! 아니다, 김 씨니까 김태공!’
그렇게 내 이름은 김태공이 되었다.
낚시원정대가 잡은 빙어로 만드는 도리뱅뱅(이런 식으로 2번 만듦)
낚시원정대의 빙어 수확은 온 가족과 함께 즐기는 빙어 시식으로 이어졌다. 통 안에 가득 담긴 빙어를 들고 남편과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빙어는 생으로 초장을 찍어서 그냥 먹어도 되지만, 고소하게 튀김가루를 묻혀 튀김으로 먹어도 맛있고 매콤하게 양념을 얹어서 바짝 익혀 먹는 도리뱅뱅이로 해도 아주 좋은 물고기다. 그래서 우린 도리뱅뱅이를 만들어 먹어보기로 했다.
참고로 빙어는 멸치처럼 뼈째로 통째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요리를 하거나 생으로 먹을 때 특별한 손질(내장을 뺀다거나 하지 않음)이 없이, 깨끗하게 표면을 닦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빙어나 피라미를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돌려 담아 기름에 살짝 튀긴 후 매콤한 양념에 조린 음식인 도리뱅뱅이는 프라이팬의 크기에 따라 많아 보이거나 적어 보이거나 하는데, 우리가 잡은 빙어는 다행히도 차고 넘쳤다. 남편은 도리뱅뱅이를 하기 위해 프라이팬을 꺼내 빙어를 진열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프라이팬을 다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도리뱅뱅이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프라이팬에 빙어를 예쁘게 펴서 담아주는 것이 포인트! 빙어의 몸이 간혹 고꾸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엔 과감하게 튀김으로 넘겨주면 된다. 도리뱅뱅이를 만드는 건 크게 어렵진 않지만, 양념이 포인트이기 때문에 비율이 중요하다. 난 옆에서 남편의 도리뱅뱅이에 들어갈 청양고추를 잘게 썰어두고, 양념할 소스를 준비했다. 황금비율로 소스를 만드는 건 솜씨 좋은 남편의 몫이었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빙어를 이용해 만든 도리뱅뱅 낚시에 관심이 없던 가족들도 낚시원정대가 잡아온 빙어로 요리를 한다고 알리자, 모두 집으로 모였다. 20명이나 되는 사람이 다 먹고도 충분할 정도로 도리뱅뱅이는 여유가 넘쳤다. 도리뱅뱅이에 맑고 깨끗한 소주 한 잔이 더해지면, 어색한 사이도 도리뱅뱅이를 먹으며 가까워지고. 빙어튀김에 안성맞춤인 시원한 맥주는 튀김의 고소한 감칠맛을 더해주어 웃음꽃을 피우게 한다. 이번엔 도리뱅뱅이니까, 소주 한 잔씩 곁들여두니 한걸음 더 가까워진 셈이다.
도리뱅뱅이를 같이 먹으며, 낚시를 하고 온 소감을 이야기하던 도련님은 내 덕에 더 많이 잡게 되었다고 하면서, 형수와 형이 왜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거창한 말 대신 엄지 척을 시전 해줬고,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어깨를 활짝 펴보였다. 빙어를 잡느라 코가 빨개졌던 낚시원정대의 첫 빙어낚시는 겨울시즌이 끝나면서 마무리되었다. 아쉬웠지만, 한걸음 정도는 가까워졌으리라.
낚시원정대와 함께 잡아온 빙어로 만든 도리뱅뱅이로 그렇게 식구가 되었다. 음식을 같이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감정을 교류하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겪으며 단단하게 이어지는 식구. 여전히 어색함은 있지만 적어도 빙어만큼은 가까워졌지 않았을까.
김태공으로 불리고 싶어서, 기특한 빙어의 입질을 느끼고 싶어서, 매년 겨울 시즌이 되면 빙어낚시가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가을의 끝무렵, 초겨울이 시작될 때 빨리 얼음이 얼길 바라는 욕심이 더 커져가는 건 김태공이기 때문일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유난히 추운 겨울이 기다려진다.
얼음이 두텁게 어는 매서운 추위가 그리워지는 시간.
낚시를 좋아하는 낚시원정대와 김태공이 갑니다!
※ 김태공이 된 작가 아내가 전하는 메시지
- 낚시원정대를 만들어 낚시 투어를 시즌별로 가보자!
- 낚시를 잘하는 사람은 티를 많이 내는 것이다.
- 잡은 고기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 도리뱅뱅이는 빙어 말고 피라미로도 만들 수 있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