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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쟁이김작가 Sep 04. 2019

캐스팅의 계절, 민물낚시가 시작되었다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의 은밀한 취미생활 <오늘도 낚습니다>

계절의 변화는 낚시도
사람도 마음도 바꿔놓는다



낚시를 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의 냄새와 풍경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코로 마음껏 달라진 공기들의 향기를 맡으며 달라지는 달큼하고 차가우며 때론 뜨겁고 서늘한 것들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사이, 낚시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겨울에만 할 수 있는 한정적인 얼음낚시의 시즌이 끝나는 2월 초가 되면 낚시 비수기에 접어든다. 물론, 비수기 없이 사시사철 내내 낚시를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4계절의 변화는 오롯이 느낄 것. 과하게 욕심부리지 않을 것. 삶에서 쉼표가 필요한 순간이 있듯이, 낚시에도 잠시 재정비를 해야 하는 쉼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온통 세상이 얼음왕국처럼 얼어붙어 두 뺨을 스쳐가는 칼바람을 견디고, 발을 디딜 때마다 아슬아슬 넘어지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사이. 그토록 강력했던 겨울의 흔적은 봄의 기운에 의해 서서히 사라진다. 따스한 한낮의 햇볕은 얼음을 녹이기에 충분하니까. 그래서 얼음이 녹고 난 강가의 물은 한여름 물에 들어가서 잠수를 하고 물놀이를 즐기기 직전까지 겨울의 날 선, 서늘함을 품고 있는 것이다.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 @김태공

계절의 흔적이 컴퓨터 파일처럼 휴지통에 버리고 비워내기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봄이어도 겨울의 집요한 서늘함은 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로, 3월부터 5월까지는 특히나 민물엔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갯벌체험을 갈 때 입는 가슴장화를 입는다면 모를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다). 물에 들어가는 건 한풀 꺾인 겨울의 끝자락에 맨몸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린 2달 남짓한 얼음낚시 시즌을 마치고 난 비수기 시즌엔 봄에서 여름, 초가을까지 이어지는 기간에 할 수 있는 민물낚시를 준비한다.


남편은 얼음낚시에 열심히 사용했던 빙어용 미니 뜰채와 낚싯대, 낚싯바늘, 빙어 전용 릴, 아이스오거(얼음 파내는 기구) 등을 겨울낚시 전용 박스에 모조리 정리해서 담아둔다. (정리를 할 때는 낚싯대, 초릿대, 릴 등 얼음낚시에 사용했던 것들을 모두 분해해서 따로 모아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이에 나는 박스에 이름을 적어두고 남편 옆에서 얼음낚시 도구들을 같이 닦거나 정리하는 걸 돕는다. 그렇게 겨울이 끝났음을 아쉬워하면서 다시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김태공

겨울낚시 도구 정리가 끝나면, 이제 봄부터 가을까지 쭉 잡을 수 있는 민물낚싯대를 꺼낸다. 얼음낚싯대는 작고 부피가 크지 않아서 종류별로 여러 개가 있지만 민물낚싯대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것만 딱 꺼내 둔다. 핑크색, 그린색.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내를 둔 남편의 준비성은 취미생활을 낚시로 하길 잘했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준다. 그러니까,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컬러의 낚싯대를 고르고 골라서 커플 낚싯대로 준비했고 그 커플 낚싯대로 낚시를 하는 게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쩌면 남편이라는 낚시꾼에 의해 내가 낚인 것인지도?

불같이 타오르는 분노에 사로잡혀 잔뜩 성난 황소를 조련하는 노련한 투우사처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며 결론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줬으니까. 


비수기 시즌에는 생각보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와 전 시즌에 했던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일. 이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겨울낚시 도구 정리가 끝나면 다음 시즌에 필요한 낚싯대를 꺼내서 어디 상한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다음 시즌에 주로 잡을 어종을 생각해두는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로 봄부터 가을 전까지는 물속에 들어가서 잡을 수 있는 꺽지, 쏘가리, 피라미 같은 민물고기를 나열하고, 거기에 맞는 미끼, 낚싯바늘, 낚싯줄, 낚싯줄을 감아줄 릴 등을 재정비한다.


재정비를 마치고 나면 여러 카페들을 살펴보고, 폭풍 인터넷 서핑을 마친 후 '이번 시즌엔 어떤 것들을 주로 낚는 게 좋을지'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를 거쳐서 주력하는 어종을 정하곤 한다. 물론 이 과정도 매번 같을 수는 없지만 대략적인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만으로도 비수기 시즌을 보내는 데는 부족할 때도 있다. 그렇게 우리의 비수기 시즌은 물에 들어갈 수 있는 5월 말부터 서서히 끝나고, 민물낚시의 성수기 시즌인 6월을 맞이한다. 


직접 그린 그림입니다! @김태공

'여보,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난 이번에 꺽지 진짜 많이 잡고 싶어!'

'매운탕 먹고 싶었구나! 알았어, 그럼 본가 말고 다른 곳들을 알아보자! 사실 다 알지도 몰라, 꺽지도. 이쯤 되면 잡으러 올 거라는 걸.'

'맞아... 다른 지역에서 잡아서 우리 자주 가는 냇가에 풀어주고 싶다 진심'


꺽지는 토종 민물고기 중 하나인데, 묵직한 입질과 매운탕으로 끓였을 때 정말 맛있는 민물어종이기도 하다. 크기는 작지만 공격성이 있는 물고기라서 비교적 쉽게 초보자들이 접하기 쉬운, 손맛이나 입질을 느끼기 쉬운 물고기이다. 생각해보면 민물낚시를 할 때 꺽지는 꼭 잡아야 하는 물고기 베스트 안에 들어갈 것 같다. 아니 들어간다. 그만큼 보편적으로 낚을 수 있으면서, 낚시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끌어올릴 수 있는 기본 중 기본이다. 


얼음낚시가 정적이었다면 민물낚시는 동적이다. 얼음 위에 앉아서 낚싯바늘을 내리는 것을 두고 얼음낚시를 내림낚시라고도 하는데, 낚시 용어라는 게 워낙 천차만별이고 사용자에 의해서 용어를 쓰기도 하니까 참고만 하자. 어쨌든, 그에 비해 민물낚시는 특히나 꺽지 등을 낚을 때는 물에 들어가 발을 담그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속을 계속 걸어 다니면서 포인트를 옮기기 때문에 꺽지 낚시를 워킹 낚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르는 건 마음이지만, 남편과 나는 꺽지 낚시(워킹 + 루어(가짜 미끼) 낚시)로 통칭하고 있다. 


이 꺽지 낚시는 민물낚시를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 어울린다. 정확한 위치에 캐스팅(낚싯바늘을 지정한 위치에 던지는 기술)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 번 던졌다가 건져 올리기를 반복하면서 본인이 던지고자 하는 위치에 안착할 수 있도록 훈련이 가능해진다. A라는 지점에 던져야 할 것을 B에 던지지 않도록, 꾸준히 연습을 하면 어느새 본인이 원하는 지점에 낚싯바늘을 제대로 꽂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니까. 

처음 캐스팅을 했을 때, 낚싯줄을 풀고 잠그는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서 낑낑거렸던 적이 있다. 툭 던지면 될 줄 알았는데, 낚싯줄이 잘 풀리도록 잠금장치를 풀어 던지는 동작이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자꾸만 속은 답답해지고,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얼굴이 벌게졌다. 실패의 쓴맛은 비릿하게 오래도록 입안에서 헹궈내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달콤한 성공이 더욱더 간절해졌다.


남편의 다정한 위로도, 이미 흥분한 상태의 나에겐 들어먹지 않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캐스팅을 나만의 페이스로 가져오게 된 건 생전에 낚시를 즐기셨던 시아버님 덕분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확하게 꽂아 넣는 시아버님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캐스팅을 하는 방법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동작은 크지 않지만 절도 있었고,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것처럼. 그렇게 유연하게 낚싯바늘을 휘리릭 던지고, 살살 감아올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물고기를 낚아 올리시는 모습에 경이로움까지 느꼈다. 유연한 손목 스냅은 마에스트로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리듬감이 넘쳤고, 그 리듬에 맞춰 가짜 미끼 루어가 달린 낚싯바늘은 우아하게 들렸다가 돌 사이에 정확히 빠져들었다.


결국 캐스팅을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던 것은 타이밍과 힘 조절 때문이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낚싯줄을 풀어주고 당기는 타이밍을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것, 그로 인해 잡히지 않은 물고기. 잡고 싶어 안달난 초보 낚시꾼의 마음이 타들어가는 동안, 놓치고 있던 실패의 원인들. 낚시는 실패의 원인을 들여다보기에 아주 좋은 자아성찰의 시간이다. 아버님을 보면서 더듬더듬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듯이, 동작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온몸에 힘을 빼고 유연하게 낚싯바늘을 멀리 던지는 연습. 그렇게 꺽지를 잡으러 남편과 물속을 걸어 다니면서 캐스팅 연습을 끊임없이 하자 조금씩 몸이 풀리면서 잘 던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노련하게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멀리, 내가 원하는 곳에 낚싯바늘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캐스팅 실력은 계절이 바뀜과 동시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민물낚시 캐스팅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 작가 아내 김태공이 추천하는 낚시 캐스팅 비법

- A라는 지점을 정해두고 낚싯바늘을 던지는 연습을 하자.

- 옆에서 자신을 응원해주는 격한 나의 편을 만들어두자.

- 낚시든, 일이든, 무엇이든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건 없다.

-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낚시도 변하는 법! 민물낚시를 만끽하자.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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