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리벤지낚시 대성공!!
잊을 수 없는 주꾸미낚시의 매력!!
지난번, 나에게 0마리 설욕을 안겨주었던 주꾸미낚시! 0마리라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명색이 김태공이란 별명도 있는데 입질 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게 가장 실망스러웠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항상 중간 이상은 했던 내게 이런 좌절을 안겨주다니! '주꾸미는 물때에 따라 혹은 기상에 따라 아주 안 잡히기도 하니까'라며 남편은 주꾸미 0마리로 충격받은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넸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왔던 것을 떠올린 남편은 '반드시 주꾸미 낚시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나의) 주꾸미 리벤지낚시(우리는 리트라이낚시라고 부른다.)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주꾸미의 주만 들어도 기겁하는 나를 보며, 매일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폭풍 검색을 했다. 내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필요한 정보를 수집 중'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걸 검색하는지 코치코치 다 물어보고 하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나 또한 넘어갔다.
'여보? 이게 다 뭐야?'
'응~ 필요한 것들이지 뭐'
'어디에 필요한데?'
'나 면도기 칼날이랑, 왁스랑, 청소포랑, 낚시.. 도구들이랑'
'벌써 빙어낚시 준비하려고?'
'아니 아니~ 다 필요한 것들이라 샀지 내가 다른 거 안 사는 거 알면서~'
'그건 그래. 알았옹!'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남편 이름으로 온 택배 상자가 하나둘 쌓여갔기 때문에, 나는 몹시도 궁금해졌다. 암묵적으로 서로의 택배 상자 또한 건들지 않는 것이 우리 부부의 철칙이라서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였지만 남편이 보통 같이 '언박싱'을 하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의 택배 상자가 5개가 되었을 무렵, 남편은 내게 바다낚시를 다시 떠나보자고 말했다.
'우리 바다낚시 가자! 준비 다했어!'
'엥? 언제 준비를 다했어? 빙어낚시 준비하는 거 아니었어?'
'택배로 올게 다 왔으니까 이제 몸만 가면 돼! 그리고 빙어낚시채비 아니야..'
'진짜?! 낚시도구라고 그래서... 그럼 언제 가면 되는데?'
'이번 주 금요일! 정확히는 목요일 밤에 출발해서 금요일 새벽에'
'금요일 새벽에? 뭐 잡으러? 어디로 가?'
'주꾸미... 리벤지하러 가야지!'
'!'
'주꾸미 잡으러 가자!'
'주꾸미... 나 지난번에 0마리였잖어... 또 못 잡으면 어떻게 해ㅠ'
'낚시가 별건가! 0마리였으니까 이제 10마리도 잡을 수 있어!'
'흐음... 고민해볼게...'
'안돼, 이미 다 예약해놔서 몸만 가면 돼!'
남편은 큰 눈을 끔벅이며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물론 주꾸미 낚시를 다녀오고 나서 파이팅하자고 했지만, 0마리의 충격을 훌훌 털어낼 만한 계기가 없었기에 자신감이 조금 없는 상태였다. 사실상 겨울이 되면 민물에 들어가 하는 워킹낚시(물 속을 걸어 다니며 하는 낚시)는 할 수 없으니 잠시 우리의 낚시 비수기 시즌이 시작되는데, 남편은 지금 딱 이때가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는 적기라고 했다.
목요일 저녁, 칼퇴근을 하고 온 남편은 낚시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미리 준비한 멀미약과 짐을 챙겨서 남편과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바다가 많이 춥다는 걸 간과한 나는 얇은 옷만 입고 가게 된다.) 남편은 집과 주차장을 오가며 짐을 날랐고, 나도 짐을 챙겨서 차로 내려갔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곳은 충남 서산! 새벽 3시쯤이었지만, 항구 주변엔 사람들로 넘쳐났다. 낚시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생각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시커먼 사람들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데 뒤섞여있는 걸 보면 꼭 낚시는 성별을 떠나 하나의 또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낚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새벽녘 차디찬 겨울바람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항구 주변으로 아이스박스와 낚싯대를 둘러멘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가 어떤 배를 타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각 낚싯배마다 선장님이 몇 시 무슨 배~라고 말을 해주는데, 자기가 타야 하는 배가 어떤 건지 명확하게 알아야 제대로 탑승할 수 있다. 늦게 오면 그 배는 바로 출발을 하지 못하기에 원망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미리 예약해둔 배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신분증은 꼭 들고 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남편은 이리저리 항구 주변을 살펴보다가 우리가 타야 하는 배가 곧 출발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둘러 나를 배를 타야 하는 곳으로 데려갔다. 달려가면서도 나는 어쩐지 웃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0마리였는데, 설마 또 0마리겠어? 그냥 딱 1마리만 잡아보자! 딱 1마리!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더니, 어느새 예약한 배 위에 올라와있었다. 이번엔 마시는 멀미약이 아니라 붙이는 멀미약을 썼는데, 4시간 전에 붙여주면 효과가 좋다고 해서 출발하기 전에 귀 밑에 붙여줬다. 그래서인지 가는 내내 편안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배는 지난번에 탔던 배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고, 단층 스타일의 배였다. 당연히 인원도 15명 이내였고, 배에 탄 사람들 중 내가 유일한 여조사(낚시꾼들은 보통 부를 때 서로를 조사라고 부른다.)였다. 물론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긴 했지만, 그분은 낚시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남편을 따라 그냥 왔다고 했다. 어쨌든 남조사들로 가득한 배 위에서 유일한 여조사로서 꼭 잡아보자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하지만 이내 풀이 좀 죽어버렸다. 배에 탄 사람들 때문이다.
'김태공 답지 않아, 힘내!!'
'아저씨들 장비가 장난이 아니야'
'낚시는 장비도 중요하지만 잡는 사람 마음이 중요하지!'
'진짜 딱 1마리만 잡았으면 좋겠다...'
'그거보다 훨씬 많이 잡을 수 있을 거야! 김태공이니까!'
'흐음...'
'김태공이잖아! 주꾸미 그까짓 거 보여줘!'
'알았어!'
민물낚시는 단체로 가는 일이 조금 드물기 때문에 프로냐 아마추어냐를 굳이 따지지 않지만, 바다낚시는 조금 다르다. 배 위에 타는 순간, 주위를 쓱 둘러보고 오면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내공이 있구나, 이 사람은 장비가 어마어마하구나. 같은... 그런 기시감이 싹 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배에도 대부분 '꾼'들이 타고 있었다. 낚싯대에 연결된 낚싯줄을 끌어올리는 것을 '릴'이라고 하는데, 보통 바다에서는 '베이트릴'을 사용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베이트릴이다. 이 베이트릴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시간에 빠르게 내릴 수 있고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인데, 남편과 낚시를 하면서 느낀 건 이제 장비만 봐도 이 사람이 '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것. 그만큼 우리도 장비를 보는 눈이 생겼다는 건데, 배 위에서 자신들의 장비를 꺼내며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촉이 오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 꾼이구나'
처음부터 이렇게 격차가 나는 사람들과 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면, 마음이 더 편해지는 건 필연적이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으니까, 나와 남편은 각자가 세운 목표를 떠올리며 집중하면 된다. 나의 경우는 0마리에서 1마리만 잡자는 것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탔던 것처럼 체험낚시로 할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실력이 비등비등해 못 잡으면 괜스레 못나 보이지만, 이렇게 '꾼'들과 할 경우에는 못 잡아도 그만, 잡으면 스스로 만족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지난번 0마리의 나와 대결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저 '꾼'들과 나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르고, 그들과 경쟁적으로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남편도 나보다 몇 마리는 더 잡아봤고, 그때 내가 느낀 건 남편을 경쟁상대로 절대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0마리의 나'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었다. 남편은 너울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눈빛을 번뜩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1마리야, 1마리!' 이날 내 목표는 10마리도 아닌 단 1마리였다.
지난번과 확실하게 다른 점이라면, 체험낚시가 아닌 종일낚시라는 것. 새벽부터 오후 4시까지 할 수 있는 종일낚시는 대부분 낚시를 조용히 오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시끌벅적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가기에 적당하다. 다만, 조금 더 오래 하기 때문에 버티기를 잘해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합격이었다. 정말 끈기 하나만큼은!
어두컴컴한 바다 위를 30분쯤 달렸을까, 선장님의 나팔 소리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입에선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지만, '삐익' 소리에 맞춰 나온 사람들은 일제히 자기가 가져온 낚싯대를 들고 낚싯바늘을 내릴 준비를 마쳤다. 남편과 같이 낚싯대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낚싯대를 들고 낚싯바늘을 내릴 준비를 했다. '자, 이제 내리세요' 선장님의 출발 소리에 일제히 사람들은 낚싯대를 잡고 낚싯바늘을 내렸다. 나도 이에 질세라 1마리만, 이란 간절함을 담아 낚싯바늘을 내렸다.
'김태공 파이팅!' 남편은 말로 하진 않았지만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오늘만큼은 내가 이 배 위의 주인공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유일한 이 배 위의 여조사였고, 0마리의 굴욕을 씻어내야 했으니까. '박. 태. 공. 파. 이. 팅!'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바라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지난번에 남편은 내내 내 눈치를 보며 낚시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남편이 마음 편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잔 생각에서였다. 남편은 웃으면서 낚싯대를 잡고 있는 나를 바라보다가 '삐익' 소리에 맞춰 같이 낚싯바늘을 내렸다.
베이트릴 버튼을 누르기 직전, 속으로 계속 '한 마리만, 욕심 안 부릴게요. 딱 한 마리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버튼을 눌렀다. 베이트릴의 버튼을 살짝 누르면 무겁게 달아둔 추가 순식간에 '촤라라락' 내려가게 되는데, 그때 유의할 것은 이 추가 바닥에 탁! 닿는 순간을 잘 캐치해야 된다는 것이다. 바닥에 닿는 느낌은 모를 수 있는데, 쉽게 알고 싶으면 낚싯줄을 보면 된다.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낚싯줄이 낚싯대 끝에서 풀려있다면 다 내려갔다는 신호니까. 그럴 땐 살짝 릴의 손잡이를 감아서 줄을 팽팽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낚싯대를 들었다 올렸다 하는 동작을 계속 반복적으로 해줘야 한다.
처음 주꾸미낚시를 하고 돌아온 날, 나는 남편과 며칠 간을 앓아누웠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랬다. 주꾸미용 낚싯대가 무겁기도 했고, 한 번도 그렇게 낚시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 몸의 세포 하나 근육이 모두 뭉치고 제자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혼돈의 카오스였고, 끙끙 거리며 일어나고 앉기를 반복했다. 그때 느낀 건 충분한 스트레칭과 낚시를 잘할 수 있게 하는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 이번엔 미리미리 몸도 풀어주고 최대한 요령껏 힘만으로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 먹물 묻은 건 망 입구이다. 오른쪽엔 에기 모습 지난번 아픔을 떠올리며 새벽녘 시작된 주꾸미낚시. 사람들을 살펴보며 비슷하게 박자를 맞춰가며 낚싯대를 내렸다가 올렸다가를 반복하니, 마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된 기분이었다. 노동가를 부르며 장엄한 표정으로 노를 젓던 장발장처럼, 사람들의 박자에 맞춰 낚싯대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열심히 반복적으로 낚싯대를 올렸다가 내리는 동작을 하다가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남편이었다.
'잘하고 있어! 잡을 수 있을 거야, 왠지 오늘 많이 잡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그냥 진짜 딱 한 마리에만 집중할래'
'자신감을 가져! 평소에 내게 하는 것처럼!!'
'놀리지 말고~!'
남편의 마지막 말에 살짝 째려봤을 때였다! 갑자기 바닥이 뭔가 탁! 걸린 느낌이 들었다. '어? 바닥에 걸렸나?' 바닥으로 끌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어서 싸해졌다. 첫 시작부터 낚싯바늘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낚시를 하다 보면 가끔 바닥에 걸려서 낚싯바늘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지금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한 마리도 못 잡고 망하는 건가... 싶어 낚싯대를 수평으로 들어 올려 릴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바닥에 쩌억쩌억 뭔가가 달라붙어있는 느낌. 처음 추가 바닥에 닿았을 때 느낌과는 다른 이 이질적인 느낌은 뭐란 말인가! 바닥에 붙어있던 것이 샥 올라오는 느낌이 들면서 내 낚싯대는 갑자기 활처럼 휘기 시작했다. 어? 어? 어! 활처럼 휘었던 낚싯대 끝으로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주꾸미였다! 남편이 지난번에 말하던 바닥에 붙어버리는 느낌, 어딘가에 걸려있는 것 같은 싸한 느낌이 바로 이거였다. 주꾸미는 먹물을 찍 뿌리며 내 낚싯바늘 끝에서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0마리를 극복한 김태공! 드디어 낚았다!!
'나 주꾸미 잡았어요!!!!!!'
'거봐!! 잡을 거랬잖아!'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멋지다! 김태공! 리벤지 시작이다!'
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분들도 축하의 눈빛을 보내줬다.(유일한 여조사였으니). 0마리의 굴욕은 온데간데없었고 신선함을 뿜어대는 주꾸미를 잡은 영광만이 배 위에 맴돌았다. 드디어 잡은 것이다! 0마리 아니고 이제 진짜 내가 그토록 바라던 1마리!! 남편은 내가 잡은 주꾸미를 물이 담긴 통에 담아주고 환하게 웃어줬다. 남편의 손을 잡고 신나게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남편이 말한 손맛이 바로 이거였구나! 이거였어! 낚싯바늘 끝으로 느껴지는 쩌억쩌억 달라붙는 느낌, 처음과 다른 묵직함.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 이게 바로 주꾸미의 손맛이었다.
1마리만 잡고 싶어요,라고 했던 나의 원대하고 소박한 목표는 금방 이룰 수 있었다. 더 이상 0마리의 굴욕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남편은 내가 잡은 걸 확인하고 본인 것을 끌어올렸다. 남편에게 '이제 안심하고 편하게 잡고 싶은 대로 잡아'라고 해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젠 누가 얼마나 잡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1마리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제 그다음은 못 잡아도 그만, 잡아도 그만이었다. 목표가 크기 않으니 오히려 그다음은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 바다보다 더 높이 있는 파란 하늘, 사람들이 낚싯대를 올렸다가 내리는 움직임, 남편이 낚싯대를 들고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는 모습, 배가 너울 때문에 계속 꿀렁꿀렁 움직였지만 배멀미는 없었다. 그저 그 너울에 맞춰서 배 위를 움직이고, 남편의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시간을 마음껏 즐겼으니까.
'오늘 더 많이 잡을 것 같은데?'
'에이... 일단 한 마리 원하던 걸 잡았으니 원 없어!'
'거짓말~ 이제 다 잡을 거 알아!'
'그럼 이제 욕심 버리고 즐겨보겠어!'
신기한 일이었다. 남편의 말대로 나는 그 이후로 계속 잡기 시작했다. 한 마리에서 다섯 마리, 다섯 마리에서 열 마리, 열 마리에서 이십 마리로. 그렇게 꾸준히 마릿수를 늘려가며 낚아 올렸고, 주꾸미 낚시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0마리에서 실망하고 주꾸미낚시를 아예 끝내버리고 말았다면, 이 희열과 환희를 느껴보지 못했겠지. 처음부터 100마리로 잡았다면, 그만큼 잡지 못해 좌절하고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1마리였으니 목표를 조금씩 늘려가며 하는 것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주꾸미는 잡아 올리는 동시에 물이 담긴 통에 넣는데, 이때 포인트는 에기 바늘이 난 반대방향으로 빼주는 것이다. 알아서 자기가 빠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바늘에 붙어있는 주꾸미를 신속 정확하게 빠르게 빼주는 것이 필요하다. 주꾸미가 통에 점점 쌓여가는 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고, 기분이 자꾸만 좋아졌다. 바다의 너울이 심하게 요동쳤지만, 오히려 나는 그 요동치는 것에 리듬을 타듯이 꿀렁거렸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건 춤이 아니었다.
어쨌든, 빙어 리벤지낚시(리트라이낚시)도 성공적이었는데! 주꾸미 리벤지낚시는 체감상 더 큰 성공으로 다가왔다. 1마리만 잡아보자던 목표에서 적어도 20배 이상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시즌이 바다 수온이 낮아지는 시기라 주꾸미 시즌의 끝물이라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에, 선장님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그래도 초보 낚시꾼이 잡은 것치고는 많이 잡은 편이라고 해줬다. 성수기 일 때 주꾸미는 200마리 이상 잡히기도 하니까. 남편은 50마리를 잡았다. 전 같았으면 엄청 질투하느라 남편을 째려봤을 테지만, 나는 남편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남편 사진이 멋있게 나오니 덩달아 찍사가 된 기분! 남편 역시 '연달아' 잡아 올리는 나를 보며 안심했다고 했다. 주꾸미낚시를 하는 내내 내 표정은 한 마리만 더 한 마리만 더,였고 즐거워 보였을 테니. 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는 걸 본 남편은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고, 잠시 낮잠을 자러 간 내 빈자리를 주꾸미와 간간히 올라온 갑오징어와 낙지로 채웠다고 했다. 실제로 남편은 갑오징어 큰 놈을 2마리나 낚았고, 낙지도 2마리나 잡아 올렸다. 갑오징어는 살짝 삶아서 먹물에 찍어먹으면 될 테고, 낙지는 주꾸미와 마찬가지로 잘 해감해서 라면을 끓여먹기로 했다.
아, 물론 내가 처음부터 '꾼'이라고 불렀던 분들은 그래도 100마리 정도는 거뜬하게 해낸 것 같았다. 장비도 비싸고 그들은 우리가 해온 낚시보다 훨씬 오래 했으니 노하우 때문이라도 달라야 했다. 어쨌든 두둑하게 통을 채울 수 있게 되자, 나는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잡은 것들을 정리했다. 총마릿수는 70마리! 목표 이상을 잡았으니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주꾸미낚시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꾸미는 입질이 센 녀석은 아니었지만, 묵직하게 딸려 올라오는 무게감을 익히기엔 충분했다.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이지만, 굳이 구태여 비교를 해본다면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하기 좋은 것이 민물낚시인 경우가 좀 더 많고 바다낚시는 날씨가 아주 좋은 날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때 하기 좋은 것 같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이번 주꾸미낚시에서 나는 남편과 처음으로 경쟁하지 않고, 서로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이상하게 샘솟는 경쟁심리는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 질문에 해답은 알 수 없었지만, 이건 분명했다.
남편이 만들어준 삶은 오징어 먹물범벅과 주꾸미낙지 라면 일단 내가 한 마리를 먼저 낚으면, 남편은 무탈 없다는 것. 편하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조차 한 마리를 낚음으로 인해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 주꾸미낚시는 정말 매력적이라는 것. 우리는 다음 주꾸미 시즌을 기대해보며, 아주 멋지게 끝낸 주꾸미낚시를 기억하기로 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던 묵직함이 주는 신호는 '주꾸미'였고, 오롯이 나는 주꾸미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주꾸미가 갖고 있는 바다향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남편과 집에 돌아오자마자 밀가루로 벅벅 주꾸미와 낙지를 씻어서 해감하고 라면에 퐁당 집어넣었다. 그렇게 끓여낸 주꾸미낙지 라면은 정말 일품이었다. 바다의 푸른 향을 그대로 지닌 갑오징어 또한 해감 후에 삶아서 오징어 먹물에 쿡쿡 찍어먹었다.
이번 주꾸미 리벤지낚시는 0마리의 굴욕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게 해 줬고, 그 어떤 요리보다 훌륭한 맛을 선사해줬다. 말하자면, 남편이 기획한 김태공 주꾸미 리벤지낚시는 아주 대성공적이었다. 그러니까, 인생은 낙담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건가 보다. 이토록 향긋하고 깊은 맛을 몇 배로 느끼게 해 주니까!
※ 주꾸미 낚시가 처음이면 알아두면 좋은 김태공 꿀팁
- 주꾸미는 추운 데서는 거의 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11월에 가면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니 부디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자. 주꾸미는 딱 9월, 10월에 가는 것이 많이 잡을 수 있는 시기이다. 인천보다는 서산 같이 아래쪽 지역으로 가는 것을 추천한다.(인천에서 0마리 굴욕을 맛봄)
- 우리가 한 바다낚시를 하고 싶으면, 선상낚시를 운영하는 업체를 알아보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예약제이기 때문에 원하는 날에 비어있으면 꼭 미리 예약해둬야 한다. 선입금을 하고 나면, 탑승일 전에 확인 문자가 온다. 보통 8만 원 내외로 전용 낚싯대가 있으면 챙겨 오는 것을 추천!
- 자기 낚싯대를 2대 정도 준비해서 가져가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 꾼들은 자기가 사용하는 낚싯대가 2대씩 있다. 자기 낚싯대가 없는 사람은 선상낚시 업체에서 빌릴 수 있다. 5만 원 내외로 에기, 에자도 빌려주니 참고!
- 체험낚시보다는 우리가 다녀온 것처럼 종일 낚시를 하는 것이 더 좋다. 종일 낚시 배의 경우에는 보통 낚시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종일이라고 해도 새벽부터 오후 3시- 4시 사이에 끝난다.
- 낚시를 할 때 보통 낚싯줄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릴'이라고 하는데, '릴'은 베이트릴과 스피닝 릴로 나뉜다. 스피닝릴은 민물, 바다낚시에 주로 쓰이는데 대부분 채비를 멀리 던질 수 있는 목적으로 쓰인다. 베이트릴은 멀리 던지는 것보다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바닥으로 내려줄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줄 감는 힘이 스피닝릴보다 강해서 주로 바다낚시용으로 많이 쓰인다.
- 0마리를 기록했다면, 다음 목표는 10마리가 아니라 1마리로 작게 시작해보자.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이상을 뛰어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더 크게 감동이 오기 때문에 목표는 너무 크고 추상적으로 잡지 말고, 구체적이고 소박하게 시작해보자.
- 선상낚시를 종일로 끊을 경우에는 '점심' 식사가 제공된다. 큰 배일 경우에는 매점도 같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라면을 끓여주기도 하는데, 내가 탄 배의 경우에는 식사가 따로 준비되어 나오는 시스템. 40인승의 큰 배인지 아니면 20인승 이하의 작은 배인지 확인하면 된다. 점심 식사는 선장님이 시간이 되면 알려주고 준비해주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자. 인원 수대로 다 주니까.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