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쟁이김작가 Oct 30. 2019

피라미낚시, 남편의 사전답사

작가 아내 회사원 남편의 은밀한 취미생활 <오늘도 낚습니다>

뭐든지 사전답사는 중요해


빙어와 사촌 지간 같은 물고기가 있다. 그건, 피라미! '에잇~ 피라미 같은 놈..'이라는 말도 가끔 나오는데, 그 피라미가 바로 이 피라미다. 아니, 그러니까 피라미는 빙어처럼 작은 어종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빙어처럼 바로 먹을 수 없고, 내장을 떼어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낚시 난이도도 그리 높은 어종은 아니다. 그러니까 빙어와 피라미는 (적어도 우리에겐) 뭐, 개찐도찐 이런 느낌이랄까?


이 작은 피라미를 잡게 된 것은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날이었다. 이상하게 이번 장마시즌에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마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물은 자꾸 말라가고, 뜨거운 태양은 자신의 뜨거움을 과시하기 위해 점점 더 뜨거워지고 모든 걸 달궈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의 낚시는 꽝! 물이 적으니 물고기들이 자꾸만 물이 있는 구석진 곳으로 숨어버리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서늘하고 깊은 물 쪽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아무리 소문난 강태공이라고 해도 점점 잡기 어려워진 것이다.


물이 말라가니 저수지의 물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이 많은 곳이 이 정도인데 당연히 우리가 종종 가는 물가는 이미 발목 정도까지만 물이 차올랐다. 그렇게 물이 마르니 물고기 씨가 말라있었다. 갑자기 낚시 권태기가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던지면 올라오지 않고, 물이 사라지고 나니 낚싯바늘을 잘 던져도 돌 사이에 끼어 낑낑 거리며 꺼내야 했다. 겨우 잡은 물고기를 풀어주고 텅 빈 통을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 남편과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보, 이러다가 내가 말라버리겠어. 올여름엔 낚시 포기해야 할까 봐...'

'음... 너무 실망하지 마. 우리 다른 걸 좀 잡아볼까?'

'다른 게 뭐가 있어? 꺾지만 한 게 또 있을까...'

'있을 거야, 내가 좀 알아볼게!'


낚시에 한창 맛을 들인 우리에게 마른장마로 인해 발생한 이 비극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갑자기 들이닥친 문제로 인해 여름 낚시는 잠시 멈춰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어두워졌던 나에게 남편이 먼저 해결책을 제안했다.

'음... 나 머리도 식힐 겸 내려갔다 올게'

'내려가서 뭐하려고...! 같이 가자!'

'일단 가서 알려줄게, 카메라랑 삼각대만 줘요'

'나도 가면 안돼?'

'응, 안돼'

'....?'


평소대로라면 같이 갔을 남편인데, 이번엔 쉬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뭐지? 나 두고 혼자 낚시하려고 가나?! 남편을 채근하고 싶어 졌지만, 단 한 번도 단칼에 베어내지 않았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에 주춤해졌다. 평소에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단호한 만큼 이번엔 물러서야 했다. 그 이후 남편은 매일 저녁 한참 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 검색을 하더니, 주말에 훌쩍 간단한 낚시도구들, 작은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겨 내려갔다.


고향 집에 내려간 남편은 종종 통화를 했지만, 낚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남편은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쉬는 동안 남편에게도 남편만의 시간을 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써 서운한 마음을 덜어냈다.


며칠 동안 내려가 있던 남편은 새카맣게 탄 얼굴로 나타났다. 어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 내려간 것 때문에 서운했지만, 얼굴을 보니 금방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엔 건강함이, 어린아이 같은 해맑음이 묻어났으니까.


'우리 다음 주에 바로 시골 내려가자!'

'어?! 왜?'

'내가 이번에 대박 영상을 찍어봤어!'

'영상? 카메라로 영상 찍었어?'

'빨리 가서 컴퓨터로 영상 봐봐'

'뭐길래 그래? 뭐 잡았는데! 혼자 잡아서 좋았냐... -_-'

'일단 보고 말해! 얼른~'


남편은 다짜고짜 주말에 다시 시골에 내려가자고 했고, 카메라에 꽂혀있던 SD카드를 건넸다. 컴퓨터에 연결해 SD카드에 들어있던 영상을 보는 순간!! 나는 남편을 껴안고 말았다. 햇볕은 쨍쨍하고 뜨거웠지만, 카메라 속에 있는 남편은 신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넣으면 잡히는 느나모드로!!!!!


물이 흘러내리는 보에 서서 피라미를 순식간에 낚아 올리는 남편의 모습은 정말 시원해 보였다. 뜨거움 작렬하는 낮에 자신의 등을 때리듯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낚싯바늘을 던졌다가 휙~ 걷어올리는 남편의 손 끝엔 파닥거리는 피라미들이 여러 마리가 달려있었다.


영상을 보다가 너무 놀라(감동적이어서) 남편을 가만히 쳐다보니, 남편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갔다가 안 잡히면 혼날까 봐, 아니 화낼까 봐... 먼저 가서 잘 잡히는지 어디가 잘 잡히고 들어가기 편한지 다 알아보고 다녔어! 영상에 찍힌 곳이 제일 들어가기 편하고, 시원하고 잡기 편하더라'

'아니 내가 언제 화를 많이 냈다고 그래!'

'봐, 지금도 화내잖아ㅋㅋ 워~ 워~'

'엄.... 내가 낚시하면서 화를 많이 냈었나?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기 너무 가고 싶다!!!!!!'

'일종의 사전답사 같은 거였는데, 잘 잡히면 기분도 좋고 시원하게 보낼 것 같아서 영상 찍어왔어! 나 잘했지~?'


남편의 사전답사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물이 덜 마른 곳을 찾아낸 것도 대단했지만, 혼자 카메라를 거치해두고 낚시했을 남편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낑낑 거리면서 땀을 닦은 뒤엔 자리를 잡은 카메라 앞에 서서 피라미 낚시를 준비했을 남편. 생각해보면 낚시를 할 때 제일 좋아하는 것도 나였고, 잘 안 될 때 감정을 드러내고 분노하는 것도 나였다. 


남편은 언제나 폭주기관차처럼 분노하고 있는 나를 잠재워주는 일을 도맡아서 했다. 본인이 더 힘들 때도 있을 텐데, 말없이 묵묵하게 챙겨주는 다정함 덕분에 낚시를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거겠지. 그런 남편이 설레발을 치지 않고 알아보고 검증되었을 때 말해준 것에 정말 감사하고 싶어졌다. 아니, 내가 낚인 게 아니라 내가 이 남자를 잘 낚았구먼!


생각해보면 운동이나 게임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서로를 생각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낚시를 하다 보니 상대방의 컨디션, 기분, 그날 날씨 등을 고려하게 되는 것.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씩 배려하고 달라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숱한 취미 속에서 낚시를 찾아낸 것이 인생을 통틀어 제일 잘했다고, '당신의 사전답사는 아주 훌륭했다'고 이날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렇게 기특하고, 다정하고, 든든한 남편의 사전답사는 우리의 낚시를 조금 더 재미있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피라미 낚시라니! 남편이 찍어온 영상처럼 겨울에 빙어를 굴비 엮듯이 잡아 올렸던 때를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다면, 이제 겨울과 여름엔 더 완벽한 낚시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피라미 낚아보니까 방법이 두 가지라서 미리 알아보면 더 좋아'

'어떤 건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하나씩 설명해줄게, 잘 봐봐 알았지?'

'응! 응!'


첫 피라미 낚시에서 30마리 이상 잡아 올린 남편의 말은 내게 절대적이었다. 그래, 뭐든 미리 공부해서 나쁠 게 없지!라는 심정으로 남편이 알려주는 방법을 하나씩 하나씩 공부해봤다. 우선, 피라미 낚시를 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피라미낚시의 두 가지 파리 & 도깨비 채비


하나는 파리 채비, 또 하나는 도깨비 채비. 파리 채비는 파리처럼 생긴 미끼가 달린 낚싯바늘을 물에 동동 띄워서 피라미가 물게 하는 방식이고, 도깨비 채비는 떡밥을 뭉친 그물망을 물에 던져서 피라미가 모여들게 하는 방식이다. 역동적인 바다낚시와는 다르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피라미 낚시인 것이다!


빙어 낚시할 때 좋아했던 게 생각나서 찾아보니까 피라미도 재미있다더라! 우리 이거 해보자~'

'너무 좋아! 빨리 준비해서 가보자!'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아!! 나도 이렇게 잡고 싶어!! 당장 가자!!'

'워워~ 진정하고 채비 다 오면 내가 바로 데려갈게~ 나만 믿고 따라와!'


남편과 피라미 낚시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잡기로 하고 피라미 낚시에 필요한 도구들을 리스트로 만들어봤다. 일단 피라미를 낚은 후 담아둘 전용 통, 도깨비 채비에 쓸 떡밥, 피라미 전용 낚싯대는 기존에 사용하던 낚싯대로 하기로 하고 두 가지 타입에 맞는 낚싯바늘을 구입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낚시용품 전문점에서 몇 가지를 구입했다. 남편의 영상에 담긴 에너지를 마음껏 느끼고 싶어져 참을 수 없이 주말이 기다려졌다.


남편의 설명을 듣고 나니, 문득 겨울에만 할 수 있었던 빙어낚시를 떠올렸다. 두터운 얼음 위에 앉아, 때론 서서 얼음 속으로 미끼가 달린 낚싯바늘을 내릴 때의 설렘. 이내 톡톡 낚싯대 끝으로 느껴지는 기특한 입질의 향연~ 탁! 건져 올렸을 때 파르르 떨며 달려있는 빙어들을 봤을 때 느꼈던 환희를 이번엔 피라미로 느낄 수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빨리, 피라미가 잡고 싶어졌다.


겨울엔 빙어를, 여름엔 피라미를! 그렇게 잡을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었다는 건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다. 하나씩 하나씩, 우리만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기분. 팍팍한 현실에서 우리만의 행복을 낚는 재미를 발견한다는 것. 그러니까 그 재미 속에서 '피라미'도 포함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사전답사를 마친 남편의 피라미 낚시 노하우

- 피라미 낚시는 얕은 물가에서도 가능하므로 큰 낚싯대보다는 낚싯줄이나 빙어 낚싯대로도 잡을 수 있다.

- 사전답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내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미리 찾아두는 것이 신상에 좋다.

- 뭐든 먼저 말하지 않고, 아내가 깜짝 놀랄 수 있는 이벤트를 준비해보자. 낚시가 편해진다.

- 피라미는 낚는 방법이 다양한 편인데,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파리 채비 또는 도깨비 채비 또는 그물로 잡는 방법 등 다양하게 있는데 때론 빙어채비로도 잡히기도 한다. 

핑크쟁이김작가
방송작가로 8년, 콘텐츠 에디터로 4년 도합 12년 넘도록 계속 글을 써오고 있는 초보 주부 겸 프리랜서 작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고 남편 밤톨군과 낚시를 하는 것을 좋아하며,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중. 최근엔 낚시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패키지여행처럼 떠나본 주꾸미낚시의 씁쓸한 첫 경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