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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seen Universe Apr 05. 2021

02. 행운의 편지

나의 네잎클로버 "후렛상"과 나눈 이야기


저녁을 먹고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은 꿈이 없어. 분명 이십대에는 공연기획이 꿈이라고 생각했거든. 돈을 못벌어도 이 일을 할거라고 생각했지. 근데...돈이 진짜 많아도 이 일을 할까? 그럼 자신이 없어져. 공연기획가라는것도 어쩌면 그냥 사회화된 꿈 아니었을까? 적당히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면서 그렇다고 아무 직업은 아닌...'




졸업하던 해에 주변엔, 

삼성썼다, LG 공고 떴다, 롯데는 글자 수 많으니 빨리 시작해라 등등 대기업이면 서른개 오십개 다 썼다는 애들이 천지였다. 소위 꿈이라는걸 빨리 찾았던 나는, 그런 친구들을 보면 속으로 시간 귀한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인생을 대기업에 허비하는 애들이라고 치부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미소된장국에 빠진 배추를 오물거리다가 마저 고민을 뱉었다.

'돈이 진짜 많으면 무슨일이 하고 싶을까? 아무튼 회사는 아니고 내 일이지 않을까? 근데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사업으로 삼을만한게 뭐가 있을까? 그 고민을 하다가 해답을 못얻고 제자리 걸음한게 몇년은 된거같아'




재명은 물었다.

'그래서 목표를 다 이루면 뭘 얻고 싶은데?'





'음...내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마침내 이뤄내는거 아닐까? 

누군가를 돕는 거...베풀고 돕느라 손이 거칠어지기를 마다 않는 거...

자연을 벗삼아 사는거,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늙는거...그런거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니야'




'돕는다는게 대단한게 아니야. 회사 탕비실에 뭔가 비품이 다 닳은걸 보고, 빛나가 채워두면.

그런 것도 다 보이지 않는 데에서 사람을 돕는거야. 꼭 아픈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을 씻겨준다고, 그런것만 돕는게 아니야'




'그치'






나는 그러다가 문득 공허해졌다.

난 매번 이런식으로 잃어왔던 것만 같다. 




한 번은 대학시절 자원활동가로 일한 영화제가 좋았다. 열 아홉살이었다. 그냥 충분히 좋아지기까지 기다려도 되는데.




내 마음은 이미 축제기획가가 되고, 

후지록, 발리스피릿, 애든버러 축제까지 한 번 만들어보자고 거기까지 마음이 내달려버렸다.




내달린 마음은 스스로의 엄격한 감독이 되었다. 

축제에서 일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봐야돼, 이것도 저것도.



축제를 가지고 글도 많이 써봐야돼.

이런글 저런글.



축제에서 인맥도 넓혀야돼.

여기 모임, 저기모임




그러다보면 나는 몸과 마음에 

행복함을 채울 겨를이 하나 없이 열심히 내달리다가 이내 속은 텅텅 비어버리고, 커피로 젖고, 피곤에 쩔어 말라 비트러진 몸만 남아



축제가 끝나면

감기를 앓고

몸살을 앓고

위염을 앓고

그렇게 지냈다.





내가 재미를 잃어버린 것들은 대게 그랬다. 

충분히 좋아하기 전에 마음이 저만치 내달려 버린 것들. 






대단히 의미있는 삶을 살아보려고

매일매일의 삶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던 나는

또 어디 쯤에서 무얼 놓치고 온걸까





그는 말을이었다.




'빛나가 자연을 여행할 때는 좀 느긋한데, 

도시를 여행할 때는 좀 바쁘더라고. 계획도 많이세우고'






'그치. 도시가면 괜히 카페도 괜찮은데 가야 할 것 같고, 레스토랑도 미슐랭가야할 것 같고 그렇잖아. 자연을 여행할때는 큰 그림은 있는데, 뭐 오늘은 어느 산을 올라봐야지. 어느 동네를 걸어봐야지. 그렇긴 해도 하나하나 섬세하게 계획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삶을 자연을 여행하듯이 살아봐. 큰그림은 생각하는데, 너무 다 계획하려고 하지말고 천천히 걸어봐. 그냥 이런것도 있구나, 저런것도 있구나, 하고.'




돌이켜보면, 그는 내게 그렇게 결혼을 이야기했었다. 나를 만나면 숲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자연을 거닐듯, 

자연으로 떠난 여행처럼

일상을 조용히 살아보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해보기로 했다.

달리 방법도 없고, 

괜찮은 방법인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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