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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직스푼 Mar 16. 2023

실리콘밸리? 내겐 그저 육아현장일 뿐

어쩌다 실리콘밸리에 오게 된 엄마의 이야기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왔을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지난해 6월, 해외파견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실리콘밸리에 오게 된 이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말입니다. 오기 전엔 솔직히 너무 좋았습니다. 예전에 뉴욕에서 몇 년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겨울이 너무너무 추웠거든요. 그래서 눈부신 태양과 바다가 연상되는 따뜻한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을 기대했었더랬습니다.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해변. 실리콘밸리로 묶이는 산호세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다.

그런데 직접 살아보니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지하고 준비가 덜 된 사람이었냐면요, 이삿짐도 못 부치고 급히 왔다지만 반팔의 가벼운 여름옷가지 몇 개와 청자켓 한 벌만 달랑 챙겨 왔습니다. 신발도 운동화 외에 여분으로 챙겨 온 게 여름에 신는 에스파드류가 다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너털웃음이 날 지경이네요. 그렇게 캘리포니아에 왔는데 너무너무 추워서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렸습니다. 한낮엔 햇살이 뜨거워 주근깨가 생길까 걱정이 되는데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금세 서늘해지더라고요. 7,8월 한여름에도 그랬습니다.


실생활은 어땠을까요. 높은 물가와 세금 같은 건 그렇다 치고 어린아이를 키우기엔 미국이 정말 힘든 곳이더라고요. 오자마자 현지 어린이집(데이케어)을 알아봤는데 기저귀 떼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는 곳도 많았고, 인기 있는 곳들은 대기만 1년이고.. 한국에서는 무료인 어린이집 비용도 한 달에 200만 원 안팎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장맘들은 적잖은 비용을 들여 내니를 쓰든 어린이집을 보내든 선택을 해야 하죠. 결국 비용이 아까우면 집에서 엄마가 독박육아를 하는 거고요.

저는 어떻게 했냐고요? 여러 가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독박육아를 해야 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아이를 씻기고 밥 먹이고 놀아주고 반찬 만들고.. 끼니는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한국에선 즉석조리식품도 많은데 여긴 없으니까 다 만들어줘야 하고, 현지 레스토랑 음식들은 왜 그리도 짠지.. 제가 먹어도 너무나 짠데 아이를 줄 수는 없는 게 엄마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미국 엄마들은 개의치 않고 단거 짠 거 다 먹이긴 하지요. 선택의 여지가 없고, 본인들도 그렇게 자라왔으니까요.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 카페에서 판매하는 키즈메뉴. 치킨을 먹여보려해도 너무 짜 아이가 안먹었다. 결국 감자튀김을 뺀 나머지는 내 입으로.

미국 엄마들의 독박육아는 그래도 좀 낫습니다. 미국 아빠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하니 엄마들은 그때부터 쉴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 회사에서 파견 나온 아빠는 재택근무를 해도 제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미국 낮시간에는 현지 사람들과 만나 네트워킹을 하고, 밤에는 한국 본사와 연락하며 일을 하고.. 솔직히 말해 부부싸움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이곳에 온 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예전에 좋아했던 카페 투어, 레스토랑 투어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요. 캘리포니아의 자연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죠. 제가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막연히 영화나 미드 속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압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요. 특히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는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찾아온 자유. 홀로 찾은 카페에선 커피와 함께 뺑오쇼콜라를 꼭 먹어줘야 한다:)

얼마 전부터 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두 돌이 지나니 아이가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엄마에게서 조금씩 떨어질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줬거든요. 그리고 이제 좀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태양이,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수록 미국에서의 삶도 그리 힘들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이제 저는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실리콘밸리 엄마들이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디를 데려가고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것을 가르치는지 말이죠. 초중고생들의 삶도 나중에 다룰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기르는지가 주된 내용이 될 겁니다. 그게 제가 직접 체험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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