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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직스푼 Mar 23. 2023

미쿡 아기들의 낮과 밤은 일찍 시작된다

저녁 8시면 잠드는 아기들의 매직?

“저 잠시 아이 좀 재우고 올게요. 와인 한 잔 하면서 놀고 계세요.”


실리콘밸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낸 지인K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이들이 함께 놀고있을 때였습니다. 8시가 넘은 시각이 되자 세 살 먹은 K의 아이는 눈을 비비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K는 아이의 손을 잡고 양치질을 시키더니 곧바로 침실이 있는 2층으로 함께 올라갔습니다. 눈치없이 오래있는 것 같아 일어서려 했는데, 오랜만에 만나 좀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며 기다려달라는 말에 다시 소파에 주저앉고 말았죠.


삼십분쯤 흘렀을까, K는 다시 다이닝룸으로 내려왔습니다. 아이가 일찍 자네,라는 말에 K는 저녁 8시가 정해진 취침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평소 8시만 되면 집에 있는 전등을 다 끄고 다함께 침실로 올라가요. 아이가 자고나면 우리 부부의 시간이 시작되죠”라고 말했습니다. 휴대폰으로 아이가 자는 방의 카메라앱을 실행시킨 채 와인을 한 병 더 따면서 K는 미소지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이를 최소한 9시에는 재워야 한다고 소아과 의사들이 이야기하지만, 실행하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요? 저도 빨리 재워보려 노력했지만 회사에서 퇴근해 저녁밥을 먹이고 함께 씻고 잠자리에 들면 저녁 9시는 금세 넘기곤 했습니다. 회사에서 대충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집에 와도 저녁 9시에 재우는 것은 너무나 빠듯했죠.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가정의 아이들은 저녁 8시에 침실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침 6~7시면 눈을 뜨죠. 아마도 이것은 실리콘밸리 혹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아이들의 일상일 겁니다. 제가 본 많은 가정에서 실제로 아이들을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들게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저녁 8시 이후 집 앞에 나가면 거의 모든 집에 블라인드가 내려져있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다.

오후 다섯시의 풍경. 이 때만 돼도 거리엔 사람이 별로 없다. 보통은 저녁 6시면 식사를 한다.

그래서 한 번은 곤란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도 아마 저녁 8시쯤 되었던 것 같아요. 급히 집앞에 무언가 사러 나갈 일이 있어 자동차에 시동을 걸려니 배터리가 방전된 일이 있었거든요. 미국 집들은 대부분 차고에 이런저런 부품이나 자동차 용품들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생각나서 결례를 무릅쓰고 이웃집에 도움을 청하러 나섰습니다. 그런데 분명 조금 전까지 뒷마당에서 아이가 조잘대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벨을 누르니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그새 어딜 나갔던 걸까요? 이미 잠들었는데 깨우는걸까 싶어서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에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잠자리에 들 수 있는 걸까요. 우선 미국의 퇴근 시간이 한국보다 이르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 정부가 규정하는 정규직 근로자의 업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입니다. 업무시간을 스스로 조정해 정해진 업무시간을 채우면 문제삼지 않는 회사들도 많기 때문에 오전 7시에 출근하거나, 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계속 업무를 이어가 퇴근을 오후 4시 전후로 앞당기는 직원을 찾아보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중시하는 가치 중 하나가 ‘가족’인데, 가족애를 형성하는 데 있어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시간을 한 시간 앞당기는 썸머타임 기간 역시 사람들의 활동시간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아침이 일찍 시작되니까 저녁도 일찍 시작되거든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바깥이 너무 밝아 시간이 너무 늦은 줄 모르고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한 적도 있었는데, 골목 끝에 사는 인도인 할머니가 저녁밥을 먹었느냐고 물으며 “아시아인 아빠들은 퇴근을 늦게 하지”란 말을 듣고 깜짝놀라 시계를 본 적도 있습니다. 네.. 그날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아이에게 밥을 먹였더랬습니다.

저녁 다섯시에 식사준비를 하지 않고 애를 산책시키는 철없는 엄마. 이렇게 해야 우리 아이는 잘 자던데요?

미국의 많은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저녁 9시 이후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점 역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습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4시간 영업점이 넘쳐나는 한국과는 달리 밤에 할 일이 별로 없거든요. 물론 사람들이 너무 늦은 시간에는 밖에 다니지 않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상점들이 일찍 닫는 것일 수도 있지요. 어느 것이 먼저이든 도처에 24시간 편의점과 식당들이 한밤 중에도 영업을 하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기에 많은 한국 아빠들은 재미없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아이를 빨리 재우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좋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행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이곳에 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잘 되지 않거든요. 친정엄마나 다른 가족들의 도움없이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저녁 8시에 재우는 일은 너무나 빠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아직 훈련이 되지 않은 어린 아이를 일찍 재우려면 어른들이 그만큼 빨리 준비가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같이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불을 끄는 것까지 말이죠. 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불빛은 왜이리 밝은지, 그걸 또 아이는 왜이렇게 잘 잡아내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에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수면 스케줄을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가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지인의 동료는 저녁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아무렇지 않게 저녁 8시에 잠들어 아침 5~6시에 일어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난다고보면 하루 9시간씩은 자는 셈인데요. 유명인들의 사례도 알려진 것들이 많은데,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도 하루 9시간의 수면시간을 지키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우리도 편해질 수 있을까요. 분리수면을 시키고, ‘네가 자야할 시간은 저녁 8시야’를 거듭 학습시키면서 말이죠. 미국의 많은 동화책들은 엄마나 아빠가 저녁 8시에 “이제 자러가기로 약속했지?”라든가 “악어의 취침시간은 저녁 8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나홀로 자는 아이들의 두려움을 줄여주기 위해 “곰돌이가 있으면 혼자 잠드는 것이 무섭지 않아”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책들도 많지요. 어젯밤 저도 책장에서 비슷한 내용의 책을 꺼내 침대맡에서 읽어주었습니다. '스스로 이른 시간에 홀로' 잠들기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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