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 놀이터를 찾아다니는 엄마와 아이들
“오늘 학교 재미있었어? 간식 먹고 놀이터 갈까?”
매일 오후 2시 30분, 데이케어에서 아이를 데려오면서 제가 묻는 말입니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놀이터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다시 묻습니다. “지난번에 모건 놀이터 갔었으니까, 오늘은 기차가 있는 바소나 레이크 공원 갈까?” 이런 식으로요.
처음 실리콘밸리에 왔을 때는 매일 같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오늘은 또 무엇을 하고 놀아주어야 하나’하고 말이죠. 급작스럽게 미국에 왔고 육아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거든요. 다행히 아이가 있는 지인이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대체 다른 엄마들은 뭐 하고 놀아줘?”라고 수도 없이 묻곤 했지요.
실리콘밸리의 많은 엄마들도 다른 곳의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은 무엇을 해줄까’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가장 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에겐 예나 지금이나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최고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들에게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곳 엄마들은 늘 같은 놀이터를 가지 않습니다. 아이가 다양한 것을 접하고 느낄 수 있도록, 일주일 내내 놀이터를 가더라도 매일 다른 곳을 찾아다니지요. 그리고 많은 놀이터가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용 얼굴이 땅에 파묻힌 조형물이 있고 어떤 곳은 배의 조종실처럼 꾸며져있기도 하고요. 보통은 공원 옆에 놀이터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 푸른 잔디가 깔린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간식을 먹기도 합니다. 저는 놀이터 옆 공원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재우곤 했는데, 홀로 잔디밭에 엎드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웹툰을 보는 그 자투리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릅니다.
놀이터 앞에는 대부분 몇 살부터 놀 수 있는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열려있는지 등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적합한 곳인지를 먼저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정확한 시각이 아니라 ‘해 뜬 이후부터 해 질 때까지’라는 식으로 적혀있어요. 안전을 위해 울타리를 둘러 문을 열고 드나들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면 문을 잠가 들어올 수 없게 해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우와’했던 놀이터들은 대부분 규모가 엄청났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역적인 특성이 있겠지요. 처음엔 팔로알토에 있는 린코나다 공원 옆 놀이터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미끄럼틀이 정말 테마파크에나 있을 만큼 거대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암벽등반용 손잡이나 그물, 통나무 계단 등을 통해 미끄럼틀에 오른 뒤 2층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 또다시 사다리에 올라 3층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옵니다. 둥근 관 안에서는 꺅꺅거리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오지요. 옆에서 듣는 사람도 즐거워지는 그런 소리 말입니다.
마운틴뷰 쇼어라인 공원에 있는 작은 놀이터는 바닷가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놀이터를 배처럼 꾸며놓았는데, 아예 이름부터가 ‘쇼어라인 레이크 보트 플레이그라운드’ 예요. 보트 안에 들어가서 키를 돌리고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해보기도 하고, 바닥에서 고운 모래도 만지고 놀 수 있지요. 아예 수영복을 입고 바다처럼 마음껏 뒹굴며 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곳은 바닷가 옆이면서 동시에 호수를 끼고 있는데, 공원 주차장에서 놀이터를 찾아가면서 수많은 오리 떼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고 호수를 바라볼 수도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는데(아마도 네 시간은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공원들과 달리 카페가 안에 있어서 저는 달달한 코코아를, 아이는 처음으로 작은 파운드케이크를 사주며 쉬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앞부분에 언급했던 바소나 레이크 카운티 공원과 놀이터도 저희 가족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로스가토스에 위치한 이곳은 역시나 호수가 있고, 오리를 볼 수 있는데 특별한 점은 주말이면 작은 기차나 회전목마를 탈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가 책에서 접했던 기찻길을 보며 “땡땡땡땡”하고 소리를 내기도 하고, 기차를 보며 “츄츄~”하기도 해서 데려간 엄마로서는 나름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네요. 이곳은 입구에서부터 전투기와 옛날 소방차, 기차 모형이 있어서 아이들이 이곳에서만 놀고 가도 아주 만족해하기도 합니다.
압도적인 규모로 지극히 미국 스러운 놀이터 소개는 그만하고, 작은 동네 놀이터도 저마다 다릅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되기 전엔 아무래도 아기자기한 놀이터가 더 마음이 놓이죠. 저는 집에서 가까운 스털링 반하트 공원에 자주 가서 점심을 먹인 뒤 들어오곤 했는데, 어린아이들을 위한 곳이기에 안전장치가 잘 되어있어서 아이가 혼자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도 안심할 수 있었어요. 때때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 아니 이제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아기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도 만날 수 있었지요. 뱅글뱅글 돌아가는 꽃 의자나 돌려서 색상을 맞추는 아기자기한 놀이기구들도 있어서 어린아이가 놀기엔 충분했습니다.
물론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곳은 너무 낡아 녹이 많이 슬어있었기에 리노베이션이 필요해 보이기도 했어요.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만지고 엎드리고 손을 입에 잘 넣으니까요. 또 대낮인데도 학교를 가지 않은 다소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이 주변에 모여서 대마를 피우는 듯한 곳도 있지요. 그래서 엄마들이 선호하는 놀이터와 그렇지 않은 곳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구글맵 지역가이드를 신청해서 그런 곳들은 사진과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어요.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그리고 엄마에게 힘든 점이 있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방에 넣어 싸갖고 다녀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곳이나 24시간 편의점이 넘쳐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편의점도 일부러 찾아가야 하거든요. 아이가 마실 물과 간단한 간식거리, 물티슈, 비상용 옷가지 같은 것들요. '대충 편의점에서 간단히 빵이나 음료수 사주지'라는 것들이 이곳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아, 물은 놀이터 옆 급수대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종종 물이 나오지 않는 곳들도 있어 준비안된 엄마에겐 초난감한 상황이 되죠.
이곳저곳을 다녀보면서 생각한 건 한국 놀이터들도 저마다 각자의 특징을 만들어 설계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거였습니다. 요즘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조형물을 세워두기도 하고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뮤지엄이나 동물원은 찾아가도 일부러 놀이터를 찾아가지는 않잖아요. 어떤 동네는 산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나무를 테마로 한다던지 또 어떤 곳은 예술인 마을과 인접해 있으니까 음악을 주제로 큰 악기들로 꾸며놓는다던지요. 매일 같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놀이터가 테마파크처럼 재미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파트는 담장을 둘러 아무나 출입하지 못한다고 해도 놀이터만큼은 누구나 와서 놀 수 있게 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많아야 의미 있는 곳이잖아요. 돈을 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놀 수 있는 곳, 그중 하나가 바로 놀이터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