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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직스푼 Apr 26. 2023

선착순 25명! 엄마의 경주는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놓칠 수 없는 즐거움, 스토리 타임

‘앗, 이러다 또 늦겠네.’

매주 수요일 오전이 되면 저는 평소보다 조금 더 바쁩니다. 아이와 함께 지역 도서관에 스토리 타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날이거든요. 오전 10시 30분부터니까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도, 막상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하다 보면 10시가 되는 건 금방입니다. 서둘러 겉옷을 입힌 뒤 카시트에서 앉네마네 잠시 씨름을 하고, 이마에 땀을 훔치며 서둘러 차를 운전합니다. 제가 자주 찾는 도서관은 선착순 25명에 들어야만 스토리 타임에 참석할 수 있어요. 도서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공간의 규모에 따라 인원 제한을 둡니다.




미국에서 육아를 할 때 느끼게 되는 건 ‘정말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애를 키우려면 키울 수 있겠구나’라는 겁니다. 데이케어 같은 기관에 보내지 않고 직접 육아를 하는 경우 엄마들은 아이를 위한 데일리 스케줄을 짜게 되는데, 하루는 놀이터, 하루는 도서관, 하루는 어린이 뮤지엄 등등으로 채우거든요. 그런데 일주일에 이틀을 도서관에 가더라도 같은 도서관을 가지는 않습니다. 도서관도 지역별로 마련돼 있는 스케줄이 다르고 특징이 다르지요. 그래서 저는 같은 날 아침과 오후, 두 번 각기 다른 도서관에 간 적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엄마들이 가장 즐겨 찾는 도서관 프로그램이 있다면 바로 ‘스토리 타임’ 일 겁니다. 도서관 한 켠에 마련된 공간에서(의자가 있을 때도 있지만 주로 카펫 위에 털썩 앉는 경우가 많더군요. 어쩐지 좀 더 친밀해 보여서 저는 좋았습니다) 선생님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선별해 온 책을 2~3권 정도 읽어줍니다. 평소 엄마가 읽어주는 책도 좋지만 또래들과 함께 둘러앉아 함께 웃기도 하고 걱정도 하고, 겁먹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끝이 나지요. 준비해 온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다시금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책 속에 나온 동물이나 곤충을 함께 그리거나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도서관 바깥 잔디밭에서 모이는 것도 색다른 재미입니다. 소풍 온 기분으로 모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지요. 비눗방울이 퐁퐁 솟아나는 장난감과 함께라면 더더욱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스토리 타임을 시작합니다. 엄마도 아이도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선생님을 따라하지요.


스토리타임 외에도 도서관을 찾으면 평소에도 재미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 인도의 빛 축제인 디왈리(Diwali) 시기엔 센트럴파크 도서관 인포메이션 부스 옆에 갖가지 색종이와 가위, 테이프 그리고 종이접기 설명이 적혀있는 프린트물이 함께 놓여있었어요. 이곳에 워낙 인도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기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인데요, 이때 아이와 함께 디왈리 축제를 위한 램프를 만들어보았답니다(네.. 실은 제가 다 했어요..). 그리고 낱말 맞추기 퍼즐과 색칠공부를 위한 프린트물이 상시 놓여있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요. 많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크레용, 색연필 등을 상시 구비해두고 있답니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아도 종이접기나 색칠공부, 퍼즐맞추기 같은 즐거운 활동을 하고 올 수 있어요.

종이접기로 디왈리램프 만들기! 엄마가 오리고 아이는 붙였다 떼었다.. 엄마는 쉬운 날이 없습니다.ㅎㅎ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잇감을 준비해두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커다란 스티로폼 블록부터 손을 끼워 놀 수 있는 인형, 레고, 나무퍼즐, 자석 알파벳 같은 것들요. 레고로 기차놀이를 하다 지루해지면 나무블록을 쌓기도 하고, 엄마와 함께 책을 읽고 간식을 먹은 뒤 자동차 놀이를 하기도 해요. 집에 장난감이 많지 않아도 도서관에 오면 하루종일 놀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도서관에 있는 장난감들은 따로 사주지 않았고, 저희 아이는 도서관에 가면 집에 안 가겠다고 버틴 적이 많았어요.

도서관에서 레고놀이도 하고 기차놀이도 하고, 나무블록도 갖고 놀고! 아이가 정말 좋아합니다.
도서관에 있는 스펀지 블록. 제 키 만큼 높이 쌓아도 보고 굴려도 보고.. 부피가 커서 엄마 입장에선 사고싶지 않은 장난감도 도서관에 오면 만날 수 있어요.

특히 산호세 도서관에서 제가 꼽는 최고의 장점이라면 바로 책을 무제한으로 빌릴 수 있고, 대여기간도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겁니다. 처음엔 책 10권을 빌려보았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책을 아무리 빌려도 아무런 제한이 없기에 확인해 보니 이곳 산호세에서는 권수 제한이 없었어요. 그리고 대여기간인 2주가 가까워지면 이메일이 옵니다. 반납일이 가까워졌는데 자동 연장되었고, 아무 때고 반납할 수 있다고요. 사실 예전엔 지나치게 오래 반납하지 않는 경우 소액의 벌금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시기 벌금을 없앴다고 해요. 지금은 성인들을 위한 책이나 컴퓨터 교육서적 같은 일부 항목만 벌금이 부활됐는데 어린이용 책들은 여전히 부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샌타클래라 같은 지역엔 100권 대여 제한이 있기도 하지만 이것도 충분히 많지요?




책을 빌리는 일을 적극 권장하는 이런 분위기는 제겐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게 하려는 아주 절박한 시도로 느껴졌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일 수 밖에 없잖아요. '유치원 가기 전 1000권 읽기' 프로젝트는 늘 진행되고, 계절에 따라 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100권 읽기 도전’ 이벤트 같은 것도 시작되는데 이때는 도전만 해도 새 책 2권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요. 저희 아이는 엄마가 사 준 수많은 유명도서보다도 이곳에서 받아 온 낯선 그림책들을 더 좋아해서 매일 읽어달라고 했답니다. 아마 스스로 책을 선택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틈틈이 시작되는 책읽기 독려 이벤트.

아, 그리고 이곳 도서관에서도 한국어 동화책은 물론 어른들을 위한 각종 도서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구름빵처럼 유명한 한국 동화책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답니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한류열풍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에 한국어 인삿말 정도는 곳곳에서 들을 수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접할 수 있도록 저도 조만간 한국어 동화책들을 도서관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아이가 데이케어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돌아오는 요즘이지만, 전 여전히 아이와 함께 거의 매일 도서관을 찾습니다. 엄마 욕심이 아니라 아이가 도서관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오히려 한두시간 머물다 집에 가자고 하면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해서 난감했던 적이 많지만,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그 어느 곳보다도 가장 좋은 곳인 것 같아요. 때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따로 플레이데이트를 할 수도 있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도, 미국에서 도서관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 끝나고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와서 숙제를 하거나 다른 아이들과 토론을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거든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공부를 고학년 학생이 도와주는 모습도 자연스럽습니다.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누구나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선생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어린시절의 좋은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도서관의 전통을 만들어가게 할 겁니다.

도서관 곳곳엔 인기있는 그림책에서 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센스있는 포스터나 표지들이 많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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