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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과 물

오래된 곁에서 늙어가는 일


오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책은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오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 있는 희곡은 어떤 제목일까 역시나, 오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사람, 듣고 또 듣는 사람은 누구누구인가


오래 곁에 두고 노래하는 악기를 쳐다본다 오래 곁에 두고 기능하는 물건을 쳐다본다 오래 곁에 두고 늙어가는 사물의 귀퉁이를 쳐다본다


어머니는 엄마 잔다 하시고 나는 예 하였다 딸아이는 아빠 잘게 하고 나는 응 하였다 아버지는 나 이제 죽는다 하는 말씀 없이 돌아가시고, 나는 잠을 잊었고


쳐다보았다 죽은 아버지의 뭉툭한 손과 까매진 발과 감긴 눈과 윤기 없는 코와 살짝 벌어진 입술과 여전하신데 죽은 아버지가 아예 죽은 사람으로 변할 때까지, 오래된 곁에서 제법 늙어가는 일을 하다가


나는 잠들 수가 없어서 물을 또 마신다 나는 정처 없어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어 뒤적이다가 이 책을 내가 왜 언제 어디에서 샀지? 하고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오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너는 누구인가 오래 곁에 두고 쓰고 또 읽고 살고 또 죽는 나는 이제 너는 이제 나는 오래된 책이 되고 너는 하얀 물이 된다 나는 이제 너는 이제 이렇게


쓰다가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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