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아버지는 아프지도 않고

오늘의 문장은 이러하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았습니다.”


어제였다. 친구가 찾아왔다. 살짝 취했다. 나가자고 했다. 그럼 가게는?


내 질문이 무색하게 벼락같은 꾸지람을 들으며 밖으로 나갔다. 김상진이랑 한 번, 김주오랑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 갔었던 동네 술집에 들어가서 술국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 시켰다. 이모님 많이 피곤한가 보다 그치?


소금에 절여진 오이처럼 혼자 일 하시는 이모님은 많이 고단해 보였고 너무 퉁명스러웠다. 그냥 모른 척하자! 다른 사람 신경 끄고 술이나 한 잔! 엄마피 빨아먹고 사는 못난 나는 엄마만 두고 밖에 나가서 통 큰 척하고 소주를 마신다! 그러하니까 누가 퉁명스럽든 말든 남 상관할 만큼 내가 사실 여유롭지 못하였다.


소주잔 하나, 얼음 글라스 하나로 몇 잔 마시다가 잠시 후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으니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술집에 혼자 들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혼자임을 즐겼다. 마치, 내가 생전에 가보지 못한 외국의 어느 거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계속 태어나는 당신에게 나는 아직 뭐라고 할 말을 다 못 하고 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다. 조금 취해서 죽은 듯 잠을 자다가 일어나자 싶었지만, 상당히 시끄럽게 떠드는 젊은이들 곁에서 또 한 병 시킬까 말까 망설였다. 한 잔은 지금 고통스러운 그대에게, 또 한 잔은 지금 고통스러운 그대에게, 또 한 잔은 지금 고통스러운 그대에게 행운을 빌며 마시고 싶었다.


이미 죽은 이에게 어떻게 어떤 행운을 빌어볼까?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서 가만가만 길게 수다를 떨어본 기억이 없다.


여기까지 적었는데 전화가 온다. 지금 어디세요? 하고 묻는다.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거기 누군가 하고 한 잔 걸치고 대학로 지나가는 길에 내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반가웠다. 오늘도 한 잔 마시면 마시는 거고, 오늘은 잠을 좀 더 잘 수 있기를 기도한다.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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