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
그전에 저는 무려 한 달여 동안을, 자동차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속초’라고 해놓고 지낸 적이 있었어요. 시동을 켜고 차를 움직일 때마다 그 음성을 들었죠. 내 일상의 목적지는 결코 속초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초에 가서 한 열흘 혼자 머물다 오고 싶다는 마음을 순순히 배반하면서, 그렇게 무참하게 한 시절을 지냈어요.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났고, 핸드폰 내비도 있으니 굳이 돈 들여 수리할 생각은 못합니다. 이제는 ‘당장 급한 곳이 아닌, 내가 늘 떠나고 싶은 목적지’를 설정하지 못하니까 ‘경로를 이탈했다’는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가 없어요. 경로를 이탈했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 어쩌면 그립습니다. 그 말은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를 각성하게 하는 말이었어요. 속초에는 딱 한번 갔었구요. 작은 자동차로 혼자 운전해서 점심때 달려갔다가 저녁에 돌아왔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온몸이 아팠지만요.
이 얘기를 전해 듣고 김나영작가는 희곡 속 한 장면에 그 남자의 독백으로 넣었었는데 그게 벌써 아주 옛날이네요.
덕분에 잠시 옛날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