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 이토록 다름

연극 <이 불안한 집>을 보다

오늘의 문장은 이러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하니”


우리는 충분히 개똥밭에 구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킨다. 또 우리는 우리가 자주 구르는 곳이 바로 개똥밭일 때가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언제 거기서 구르는가! 우리가 구르는 개똥밭은 어디이며 그건 또 뭔가! 개는 좋아하는데 그토록, 개똥은 싫어함? 뭔가 인간적으로 납득가능이다.


말을 바꾸어 갑자기, 옛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겠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에서 제법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보아도, 거기나 여기나 매한가지, 적당히, 나름대로, 개똥밭이긴 마찬가지다!


<일리아스>의 대미를 장식하던 명장 아킬레우스가 죽어서 저승에 머문다는 사실은 <오딧세이아>에서 나오는데


오디세우스가 저승에 갔을 때 거기서, 멋지게 폼나게 앉아있던 아킬레우스를 보고 다가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와! 당신은 살았을 때도 굉장히 높임을 받고 죽어서도 이렇게 죽은 자들 사이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신가?”


그랬더니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죽어서 모든 사람들 다스리는 것보다 살아서, 아무 재산도 없는 사람밑에서, 종살이하는 게 더 낫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지 말고, 살아남아서, 꼭,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가르치고 있나? 집으로. 집으로. 바로 오늘이란 그렇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 불평불만 갖지 말자. 그냥 그런 거다.


‘오늘’이란 단어는 거기에, 연극 ‘이 불안한 집’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등장하였고 등장인물의 입으로 발음되었지만 분명히, 나는 그보다 ‘내일’이란 단어에 멱살 잡혔다. 내일을 염두에 두는 오늘이 아니라, 어제의 덧에 걸린 오늘의 내 몸이 뻑뻑하게 굳어졌다. 이 불안한 집! 희곡을 한글로 읽고 싶지만 그건 용이하지 않고, 원서를 해외배송으로 주문하였다. 조금 값이 나가지만 뭐 담배를 끊었으니까 괜찮다.


오늘이란 어제와

내일 사이에 무릇, 머물러 있다.


그러나 문제는, 조금 고통인 것은, 오늘은 중립적이지 않고 편파적이기 때문이다. 중립. 중도. 가운데. 방향 없음. 미지. 관념. 이상. 꿈. 열망. 그러나 내일이란 얼마나 중립적인가? (이 불안한 집) 무턱대고 절망이며 또 관념적인 희망인가? 그러니까 내일이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미래인가? 이 불안한 집은 그러므로 얼마나 개똥밭인가? 그럼에도, 나는 이 불안한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김정 연출

#이불안한집


두 번 더 보고 싶은데 역시 불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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