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같은가

허름한 장판 위에서

“한강,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고통! 인간에 대한 탐색은 언어에 대한 탐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눈으로 밑줄을 긋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옮겨 담고서 극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썩 가볍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인데, 공연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가족이란 단어에 대하여 일종의 긴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화의 근원을 어린 시절 내 가족에게서 이미 공부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렇게나 던진 한마디 말에 제대로 상처를 받고 넘어지는 섬약한 기질. 내게 건네오는 말이 이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외모에 의미 있는 자리라도 나는 곧장 질색한다.


온통 말뿐인 책을 여섯 권이나 사서 종이봉투를 달랑거리며 동숭무대소극장으로 들어서는데 무대를 척 보자마자 기가 팍 질렸다. 이곳에서, 윤미현의 희곡집에 수록된 ‘장판’에서와 비슷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는 내내 온몸이 바르르르 진동하였다.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내 마음이 길게 찢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 때문에 나는 부끄러웠고 어제의 오디션 현장이 다시금 생각났다. 영화 <다음 소희>를 감상한 직후였기 때문에 살아가는 일에 대한 무력감에 치가 떨리던 심장근육이 다시 파르르르 아파왔다.


나는 이제 ‘다음 소희’에서 말하던 인센티브라는 단어를 증오하기로 결심까지 하였듯이 오늘부터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 가슴 한쪽에다 압정으로 꽉 눌러놓기로 작정하였다.


가족 이야기. 어처구니없는 이들이 허름한 장판 위에서 울고 웃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들의 투철한 이야기.


죽은 아버지를 머리맡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에서는 영화 <굿, 바이>가 떠올랐다.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착각이 일어났다.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 연극에서는 초반 장면.


이 연극 #우리가족같은가

보는 내내 깊은 곳에서 나는 울었다. 마지막 장면 몇몇 모서리에서 참았던 눈물이 그만 쪼록 흘렀다.


무릎 꿇는 일. 무릅쓰며 살아가는 일. 비겁자로 버티는 일. 음지에서 삶을 견디는 일. 그러면서 가족을 흠모하는 일. 그러면서 가족을 은유하는 일.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로 살아남기 위해 그게 얼마나 힘에 부치는가를 각성하는 일. 어쩌면 삶에는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는 것 아닌가 깨닫는 일.


감정과 동거하는 인물들의 고통과 절망! 감정과 말과 동거 중인 사람들을 감상하며 나 역시 그들의 일상에 참가하는 일. 그러니 우리의 연극은 썩 위대한 경험이 아닐까.


공연이 순식간에 끝나자, 나는 주오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청하였다. 늙느라고 몸이 너무 안 좋은데도 마시고 싶었다. 누구라도 오래 말이 없어도 한결같이 편안한 그 한 사람 내 앞에 앉아있었으면 참 고마웠을 것 같은 지난밤들이 일제히 떠올랐다.


나는 비겁해요. 나는 천덕꾸러기. 나는 힘이 없어요. 나는 하고 싶은 말 한 개도 못해요. 하듯이 그저 밑으로 땅바닥으로 낙하하는 하얗고 가느다란 눈이 내려 온통 까만 밤으로 소멸되는, 낙인찍히는, 숨죽이는, 변신하는, 대학로 주점 서커스싸구려관람석 그 오래된 안과 밖에서.


한강의 문장만큼 강추 연극 #우리가족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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