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G12

중고서점 알라딘

서가 G12,


나는 새책이 뭐가 나왔나 보다, 누가 방금 어떤 책을 팔고 갔을까가 더 궁금하다. 새책은 활발하게 광고를 해주지만, 헌책은 내가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서 직접 찾아 열어야만 하는 다락방의 보물상자 같으니까. 간판명처럼 멋진 대학로 중고서점 알라딘, 중고책들이 더 편안한 이유는 청년시절에 중고옷가게를 더 자주 드나들던 습관이 옮겨 붙은 것이 분명하다. 나의 현재는 나의 청년시절의 연장선이겠다. 남들은 잘 모르는 시간이 아직 여기에.


방금 누가 책을 팔고 돈을 받아갔다. 정가 8000원짜리인데 중고가격이 5500원이다. 눈에 확 띄는 글쓴이의 이름을 내 손이 만졌다. 두툼한 월간지처럼 믿음직스럽게 생긴 남자 직원이 마일리지 사용하세요? 묻더니 네, 하니까 2090원입니다 한다. ‘G12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장’에서 나는 무려 2090년을 헐값에 사들인 기분.


2090년은, 내 삶을 다 소진한 뒤로도 한참이며 내겐 허락되지 않는 시간, 나 말고 우리 아이들이 장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는 시절. 뭔가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삶으로 점철되기를, 절대로 죽을똥살똥 노력할 수밖에 없는 시절을 나보다 더 늙은 우리 아이들이 잘 감당하기를. 갑자기 간절함이 얼굴에 묻었다.


오늘 주오랑 보기로 약속한 공연이 빅재미 이어달리기 세 번째 작품 <우리가족같은가> 인데 아직 30분이나 남았기 때문에, 늘 한산한 골목 안쪽 카페에 들어가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서 뒤에서부터 책장을 넘겼다.


한강의 문장을 당장 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한강에 대한 해설을 지금 당장 읽고 싶어서였다. 거기에 이렇게 써져있었다.


“한강,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고통! 인간에 대한 탐색은 언어에 대한 탐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눈으로 밑줄을 긋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옮겨 담고서 극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썩 가볍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인데, 공연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가족이란 단어에 대하여 일종의 긴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간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화의 근원을 어린 시절 내 가족에게서 이미 공부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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