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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내일 죽는다

내가 이 한밤 중에 어떤,


시를 읽는 이유는 내 다 떨어진, 부욱 트더진 마음을 공짜로 줍거나 수선하기 위해서다, 혹은 덜떨어진, 모국어가, 이토록 한 물 간 내 마음의 시치미를 건드리는구나. 가끔은 전력질주를! 나도 끈 떨어진 연처럼, 맛이 간 운동화 뒤꿈치처럼, 아버지의 샛길과 어머니의 옆길과 아내와 아이들의 앞엣길을 지우며 멀리멀리 그러나 게을게을 게으르게 앞으로만 내달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후회롭게 돋아나는 차가운 밤이로다. 말하자면 이러한 문장들이,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강>, 황인숙


왜 하필이면 강에 가서 말을 토해야 하나. 강물은 무엇 때문에 하염이 없나. 끝이 없고 시작도 없이, 오로지 흐르는 동작을 수행할 뿐인데도 강물은 얼마나 혹독하게 꾸짖는가, 우리를. 그래서 거기로 가서, 속 시원하게 혼바람맞고 돌아서서 다시 살아야, 살아가야만 하는 거지 뭐, 별도리가 없어선가. 그저 흘러야, 흘러서 가야 하는 것임을 다짐하는 이 한 밤, 드디어,


우리 아버지가 내일 죽는다!


#아버지 첫 번째 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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