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영도
바로 이 연극,
그 무엇인가가, 그 누군가가 내 속에 어렴풋하게나마 꿈틀거리면서 말하고 싶어 했다.
어제였다. 공연을 보는 내내 누군가 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한 번은 인물의 말을 반복해서 발음했고, 또 한 번은 이미 지나간 장면인데 다시 돌이켜 말을 했다. 대충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수시로 내게 알려준다. 손등에라도 서둘러 그의 말을 받아 적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보는 일은 그러므로 내 속을 듣는 일이다.
시간은, 내가 지닌 속도보다 더 빨리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이 작품이 그랬다.
나는 종종 머릿속에 가득한 문장들이 흔들려 지워질까 봐서 천천히 걷고 싶었다. 우리가 천천히 걷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자기 속을 듣고 있는 중인 거다.
극 중에서 그녀가 나처럼 그랬다. 그녀는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것일까. 듣고 있는 중일까. 왜 대답을 미루는가. 살인자에게는 말을 걸고 싶어 하고, 곁에 머무는 사람은 끝까지 밀쳐낸다.
누군가 나서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바로 내 삶의 이유를 방향 잡는 일인가, 마음으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끝까지 쳐다보는 일은 바로 나 자신을 살게 하는 일은 아닌가. 용서란 그 이후에나 가능한가.
규칙을 지키도록 가르치면서 본인이 먼저 그것을 지키는 일, 교육이 가능한 사람과 교육이 불가능한 사람, 그 누구도 나를 죽일 수 없다는 말, 정부가 하는 일과 그의 행동이 어떻게 같은가, 그녀는 현재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갇혀있는 그는 왜 고통인가. 두 남자는 누구인가. 모두 어디에서 서성이고 있나?
희곡을 쓴 작가를 찾아보니까 가네시다 다쓰오!
루트 64
어른의 시간
고르곤
가석방
만세는 부르지 않겠다
겨울꽃
셀룰로이드
절대영도
한국에서 모두 번역되고 공연되었다. 나는 두 작품 빼고 희곡을 읽었거나 이미 공연으로 보았다. 많이 읽어서 귀에 익숙할 것 같은데도 매번 낯선 이야기, ‘인물의 성격보다 중요한 것은 플롯이다’라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순간 떠올랐다.
가해자의 심리를 왜 깊게 연구하는가. 피해자의 상태를 왜 길게 펼쳐놓어야 할까. 그들은 모두 어디로 향하고 있나.
나는 절대영도라는 신조어를 공부한다. 유기적인 신진대사가 이룩하는 생명의 숨결이 모두 허물어지는 온도에 이를 때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삭제하는가.
꼭 봐야 할 작품, 절대영도.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연극하면서, 연극 속에서 같이 늙어가는 사람, 나는 매우 편협한 관객이지만, 그래서 늘 보는 사람만 보곤 하지만, 오늘도,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연기의 세계를 보여준 배우들에게 손뼉을 친다.
형! 생일인데 뭘 이런 연극을 봐요? 하고 오재균이가 말했는데, 난 속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만선’을 보기에도 좀 그렇지 않겠냐? 그건 일가족이 가족동반자살을 하려고 통통배를 훔쳐서 바다로 달려가는 연극이잖아.
나는 ‘만선’을 보려고 한다. 오늘. 혼자니까 시간 만들 수 있는 사람 같이 보아요.
배우들에게 손뼉 쳐야 할 작품이다 역시!
김원 작가의 희곡 ‘만선’
극단 미지애씨어터, 언제나 짱짱짱!!
#절대영도
#창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