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머니가 살짝 웃을 수 있는 농담을 찾아야겠다

오늘의 어머니

메모,


갑자기 초저녁부터 밤까지 잠을 푹 잤다. 그건 당장 해야 할 일에 대한 외면의 일종. 조만간 꼭 해야 할 일에 대한 시큰둥한 반응. 작년 말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두터운 책의 절반 지난 부분을 읽다가 그만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나서 도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니 곧 몸이 무거웠다.


오늘 아침부터 당분간 집중하고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토요일이었고 특별한 약속이 없으니 마땅히 연극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 할 사람 없이 혼자 보는 관습을 깔고 앉아서 몇 군데 전화통화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통화가 끝나자 잠이 들었나 보다.


자면서 꿈속에서 음악을 들었다. 깨어보니 핸드폰에서 들려왔다. 지난주에 꿈에 나타났던 녀석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바쁠 텐데 나중에 할까 하였다.


잠깐 아니, 어느덧 오래오래 옛날 사진을 넘겨 보았다. 침대에 누워 오래오래 음악을 듣고 눈에 띄는 악기에 군침을 흘렸다. 나는 악기를 보면 이상하게 군침이 돈다. 음식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사람처럼. 악기 연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노래하는 사람처럼 행복에 젖어있는 무엇을 본다. 제목을 하나 적었다.


싱어게인 3가 끝났으니 이제 나는 무엇으로 울지?


부자 아빠가 못된다는 생각은 나는 부자 아들이 아니라서 미안하다는 생각과 함께, 잘 살아간다는 것은 작은 것에 만족을 느낄 줄 안다는 것과 어떻게 같은가에 대한 생각을 끝냈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직 행복하다고 말해야만 한다. 별 수가 없어도 나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데 그녀는, 나의 동료인 그녀는 허심탄회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내 머릿속에 바늘이 하나 꽂힌 듯이 사흘 동안이나 마음이 아팠다. 나는 메모하였다.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그대여! 내가 대답할 말을 지금도 찾고 있어! 기다려봐 봐 꼭 찾아낼 거니까.


후배 한 녀석은 간이식수술이 잘 끝났다고 하고, 오랜 선배의 아버지와 나이 어린 후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한참 쳐다보았던 하루가 저물고 있다. 부고를 적는 마음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아버지 첫 번째 기일이 다가온다.


어머니,


서커스에서 어머니 사용하시라고 사드렸던 새로운 전기장판을 보자기에 싸서 한 손에 들었다. 아침에 가게로 가져가고 새벽에 다시 집으로 가져온다. 감기 걸리면 안 된다고 내 침대에 올려놓으라고 성화시다. 난 괜찮은데. 난 괜찮은데 어머니 혼자 식사하시기 싫다 하셔서 그저께는 밖에서 먹었던 저녁을 다시 먹었더니 설사가 났었다. 식사를 마치신 어머니 말씀하셨다. 손님 없으니까 들어가자!


좌절이 없으신 건 아니지만 절망을 감추고 삶의 용기를 잃지 않으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살짝 웃을 수 있는 농담을 매일 하나씩 찾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라 룰의 희곡 <깨끗한 집>에서 청소하기 싫어하던 가정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어머니와 이렇게 걷는다. 오늘도.

작가의 이전글 장막을 걷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