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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보라색을 마셨다

맛을 색깔로 말하는 사람

어제의 커피,


맛을 색깔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전엔 잘 몰랐다. 일종의 불가피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뭐라고 다른 말을 찾을 수 없을 그런 때가 있듯이. 그날 처음 찾아간 거기, 그 커피가 딱 그랬다.


“이 커피는 짙은 보라색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 커피는 짙은 보라색 맛이 날 것입니다."라고 알아듣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다. 하얀 눈 내리는 까만 밤에 어울리는 커피라는 대사는 최원석의 희곡 <변태- metamorphosis>에 나오는 말이었지만, 정말로 까만 밤의 내리는 눈의 하얀색맛 커피도 있다면 좋겠고, 전나무 숲 속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볼 때 느껴지는 전나무 숲색맛 커피도 있으면 좋겠다 싶다.


소개하는 그림으로 보다가 직접 찾은 곳, 실내를 구경하는데 천정 높고 화분을 여유롭게 배치한 실내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정겨운 넓은 창가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데 정성스럽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이 왔다. 맛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차 스푼 하나 정도면 되는데, 아! 정말로 짙은 보라색! 나는 분명히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정말로 짙은 보라색맛이 있구나 하면서. 컵노트를 보니까 블루베리잼, 다크초콜릿이다. 커피 스토리도 재밌다.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담아 초콜릿을 선물하는 상상에서 탄생한 시즈널 블렌드, 내추럴 가공 방식을 거친 강배전 커피’ 그래서 이름이 ‘디어’구나.


내가 하면 그렇게 뚜렷하게 짙은 보라색맛이 나질 않으니까, 모처럼 시간을 내어 다시 그 짙은 보라색을 마시려고 갔더니, 5월의 커피 '디어'는 이제 없다고 한다. 5월의 커피 디어를 내려주었던 바리스타의 닉네임을 물었더니 'Moon'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작은 소리로 ‘그때 내려주신 그 커피 디어가 정말 좋았습니다.‘라고 하자, ’고맙습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라인더 분쇄도 공부한다고 이렇게 한 칸 한 칸 변화시키며 갈아서 빈셀러에 넣고 포스티잇 붙이고 일일이 기록하는데, 하루에 한 잔 내려마시는 커피가 차분하게 나를 내려놓게 한다면, 앞으로 오랜동안 이런 시간을 간직할 것이다.


글쓰기가 자신만의 유일한 장소를 간직하는 일이라면, 커피 내리는 아침은, 커피와 함께 하는 순간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짙은 보라색, 옅은 분홍색, 어두운 고동색으로 내려마시는 일쯤이 되겠다.


6월이니까 이제 6월의 커피를 마셔야 하겠지만 아직도 '디어'를 마시고 싶다.


나는 커피가 좋다.


#디어

#강배전

#짙은보라색맛

#Bean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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