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침묵보다 느리게 대단히

어떤 정신과 용기를 공부하네

   은유라는 자극! 사색의 여행길에 우뚝 선 이들의 친구. 은유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있다면 냉큼  달려가겠죠, 좋아하니까. 거기에 당신이라는 은유가 머물고 있을 겁니다. 우리 두 사람의 안과 밖. 나의 몰두가 향하는 곳. 인간관계라는 정의, 그 정의에 대한 또 다른 해석, 그 해석을 돕는 특별한 가능성, 그 가능성을 향한 투철한 의지값, 그 투철한 의지값을 짊어진 일상의 모험, 큰길에서 탈출한 샛길을 감당하며 그 모든 모험을 끌어안고 서로에게 끼치는 생명의 자극점. 뿌리를 쳐다보면서 공부해요. 동물계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생명의 신비가 식물계에 있음을. 그 고요함! 세상살이가 권태로울 때, 이 세상 논리와 이치가 지겨울 때 고독의 발상지 식물에게 마음 빼앗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엊그제 동네서점 날일달월에서 이제 막 뿌리가 돋아난 고무나무 가지를 얻어왔어요. 나무인데도 나무가 아닌, 몸에서 벗어난 요상한 꼬투리, 고무나무줄기에서 벗어난 가지 하나! 그 나뭇가지를 쳐다보며 메모. 나무의 꿈 혹은 저 손들, 이 삶을 보라. 이토록 치열하고도 사소한 나무 혹은 침묵의 정신! 이러한 작태는 어쩌면 꿈에 더 가깝다. 나무들에게 배운 대로 우리가 살 수는 없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을 거다. 범접할 수가 없으니. 가지 하나가 물의 살들을 긁어대면서 생명을 수혈하는 와중에 뼈를 발라낸 꿈들은 고단한 삶을 은유하느라 갖은 애를 쓰고 있나니 우리가 감히 마음 갖다 댈 수조차 없는 경지가 저 끝에도 있다. 그런데 저건 무엇일까? 물에 깃드는 새살일까, 물의 심장 찌르는 가시일까? 나무의, 마음일까? 어떤 정신과 용기, 그것일까? 아니면 고무나무의 꿈일까? 어쩌다 절단난 저 끝에서, 살 트더진 거기에서, 찬물을 매만지는 가시 같은 하얀 손들이 자라나니 우리네 인생보다 더욱더 장하도다! 뿌리들은 태생이 약하니 물보다 느리고 시간보다 느려 늘상 사물의 시간 밖에서만, 고요하게, 돌멩이보다 더 느린 자세로 삶 혹은 꿈을 덧대고 있네. 침묵보다 더 느리게 대단히 느리게.


작가의 이전글 친절하라, 그러면서 잘 버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