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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쓰는 연습, 말하는 연습


발음기호가 없는 말소리는 얼마나 고독한가.


[이름]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라 하고, [명사]를 찾아보면, 이름씨,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라고 하고, [씨]를 찾아보면, 단어를 기능, 형태, 의미에 따라 나눈 갈래라고 품사와 같은 말이라 적혀있다.


내가 아닌 어떤 이름. 이름씨. 그래서 이름은 자기를 구별하는 꿈이다. 사물의 이름은 사물을 구별하는 꿈, 사람의 이름은 사람을 구별하는 꿈이다. 사람이 아니고 생물도 아닌, 보이지 않는 그것들의 가볍지 않은 이름들에게도 종종 마음 빼앗기는 이유는 사람 아닌 무엇인가 날 부르고 있기 때문일까. 말하자면 불굴의 정신이라든가,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인내심이라든가, 내일을 향해 가야 할 방향이라든가. 이렇게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이름씨에게 오늘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고마움을 느끼고, 오늘은 습기가 많은 날 그래서 바람도 묵직한데, 저기를 올려다보며 저건 하늘이라고 부르고, 또 저기를 보고 저건 구름이라고 부르고, 또 저기 쟤네들, 새들, 아까부터 나무 가지에 앉아서, 전깃줄에 앉아서 내가 머문 세상을 쳐다보는 저 새들의 말소리를 내 이름처럼 불러보고 싶네. 재잘거리며 잘게 부서지는 소리를 적어보면 까부르르르. 삐리리리리릭, 뚜르르르륵. 삐르륵끼륵. 찌륵찌륵찌륵. 쓰엑쓰엑. 발음기호로 기록하여 남기고 흉내 내어 기억할 수 없는 말소리는 얼마나 고독한가. 발음할 수가 없어서 차츰 기억에서 멀어지는, 이 세상에서 점점 떠나가는 이름들은 얼마나 슬픈가. 저 새들의 말소리를 도저히 내 말습관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지만 나는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서 나와는 구별되는 그것을 내 이름처럼 불러보네. 새처럼 날으는 허공을. 나무처럼 버티는 해질녘을. 점점 더 밤으로 번지는 색깔을. 그리고 너를. 또 너를. 자꾸만 부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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