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나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진짜로 혼잣말을 하면서 돌아다녔다는 의미는 아니고,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 혼자서 생각하기를 즐겼다는 의미다. 난 말수가 적었지만 내 안에서 나는 굉장한 수다쟁이 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문체를 바탕으로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달팽이가 당근 먹으면 주황색 똥을 싸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나는 무럭무럭 자라 영화과에 진학했지만 난 생각만 잘했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영화가 마냥 좋았을 뿐 이걸로 내 생계를 잇기에는 한참 모자랐다는 거다. 이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건지 학교는 조금 다니다 휴학해 버렸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며 나이를 먹어갔다.
내가 20대 초반이던 즈음에 인스타그램이 유행했고, 어린 나는 정사각형 안의 예쁜 언니나 또래를 보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었다. 거기서 자신의 일상과 짧은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짧은 몇 줄의 글에 자신의 생각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드러내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이 꽤 감명 깊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내 인스타그램에 내 생각을 담은 글을 가끔씩 업로드했다. 난 예쁘지도 않고 날씬하지도 않았으니 별다른 관심을 받진 못했다. 그럼에도 내 생각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웠다. 내가 영화를 좋아했고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였구나. 난 그제야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교외에 살고 있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도시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매일 3시간을 버스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거기서 시간을 때우는 방법은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시선은 창밖에 고정시킨 채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쓰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메모장에 써 내려갔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옮겨 게시버튼을 눌렀다.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필력이 좋다거나 글이 재밌다는 댓글이 종종 달렸다. 그 어떤 칭찬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그것들은 메모장을 가득가득 채워나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글들이 꽤 모였을 때쯤, 내 글을 모아 자가출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쓴 글을 종이에서 보고 싶어 시작해 본 것이었는데 실제로 한부가 팔려 놀람과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살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책꽂이에 꽂혀있는 내 책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본격적으로 삶에 뛰어든 후, 통 글을 멀리하고 살다 친구의 제안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된 지도 4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지금보다는 어릴 적에 쓴 글과 지금 쓰는 글을 비교해 보면 내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 글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게 드러나는 것 같다. 글에는 내가 그 당시하고 있던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읽으면서 그때의 나를 어렴풋이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쓴 글을 통해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경험은 진귀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 심심하면 그동안 써놓은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정도다. 읽어나갈 글이 늘어날 때마다, 몇 년 전에 작성된 먼지 묻은 글이 발견될 때마다 나는 책을 처음 출판했을 때처럼 뿌듯함과 주체할 수 없는 설렘 같은 것이 마음에 가득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그 이름 모를 감정을 나는 사랑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도 언젠간 모여 하나의 책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절대 대충, 게을리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