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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수 Aug 04. 2024

나의 해방일지

30대가 되었다.

20살이 되었을 때, 난 정말로 행복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어릴 거였으니까. 어딜 가도 막내였고 어리다는 이유로 이해해 주고, 귀여워해주는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생각을 한다.’ 이것이 내게는 최고의 훈장과도 같았다. 30살이 되었을 때, 어딜 가도 막내이긴 힘들고, 귀여워해주는 것은 사양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고 아닌척하지만 속으론 내심 좋아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사람도 이렇게 바뀌어버린다. 성인이 되고 1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내가 해방된 것들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참고로 같은 이름의 드라마는 아직 보지 않았다.   


1. 주인공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나는 생각이 참 많았다. 이걸 글로 옮기면서 나는 은연중에 내가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도 어른스럽고, 글도 제법 쓸 줄 안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업로드하는 글의 어조는 단단해지고, 어딘가 설파하는 듯한 느낌을 드러내었다. 쌓이는 좋아요 수를 보며 (그래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나의 착각을 더욱더 공고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그저 그런 세상에 던져진, 겉으로는 무채색처럼 눈에 띄지 않지만 사실은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인간일 것이라고 믿었다. 난세에 두각을 드러낼 그런 영웅말이다. 물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여야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80억이 모이면 더 이상 주인공의 자리를 보전하기는 힘들어진다.


나에게서는 빛도 나오지 않고 살면서 별달리 힘든 일 없이 이 정도 자란 건 숨은 영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운이 좋았던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그저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줄 알았는데 대사 한 줄 없는 단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이 상황을 웃어넘기진 못할 것이다. 이때의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돈을 벌고 입에 풀칠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람에 나부끼는 천 쪼가리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겪으며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글에는 무엇하나 단정 지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찼다. 그때는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 시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정답대신 선택만 있을 뿐이었다.   


2. 거울

그다지 똑똑하진 않았던 내가 자라면서 분명하게 알고 있던 사실은 내가 그렇게 예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날더러 못생겼다고 했고 누구는 날더러 예쁘다고 했다. 뭐 어쩌라는 건지 몰라서 그냥 생긴 대로 살았다. 남녀공학인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마주한 아이들은 저마다 뽐내며 자신이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바빴다. 그 총성 없는 전쟁(?)에 참전하게 된 나는 공작새처럼 열심히 나를 꾸몄다. 나에 대한 피드백 하나하나에 목을 매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동성 친구가 내 신체부위에 대해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해도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를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소해도 될 것 같은데 그땐 왜 그냥 넘어간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이것들을 전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왔던 외모에 관한 생각을 모조리 해체시키는 일련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 뒤, 이건 내 취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예쁘고 매력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뒤 내 삶은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20대의 나는 내 외모의 단점만을 떠올리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미워했지만 이 얼굴도 이제 오래 봐서 그런지 익숙하고 정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살아온 세월이 드러난다는데, 나는 과연 잘 살아왔는지, 아님 심술만 가득 품고 살아왔는지 궁금해진다.


20대 때는 나의 30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30대가 된 지금은 40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도 금방일 테다. 그 사이에 나는 어떠한 것들을 겪게 되고 그 속에서 어떤 것들을 깨닫게 될까. 무엇에 홀려 정신을 잃지 않아 불혹이라 부른다는데, 지금의 나보다 좀 더 단단해져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두렵지만 여전히 설렌다. 부디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도 앞으로의 삶이 한 번쯤은 살아봄직 한 것으로 여겨지길 바라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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